[오늘의 메뉴] 식사 알림장
2023년 4월 19일 수요일
어제는 유독 그랬다. 늘 지나가는 길인데 그날따라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퇴근길을 잠시나마 즐겁게 해주는 매력적인 향기. 그곳을 스치는 순간은 옆을 보고 걷는다. 차마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통닭 튀기는 냄새가 걸음을 느리게 만들더니 2차로 곱창냄새가 멈칫하게 만들었다. 매일 보는 장면이고 매일 맡는 냄새인데 유독 다르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한 가지 선택지를 냈다. 매력적인 향기의 최강자는 누구일까. 곱창 굽는 냄새 vs 삼겹살 굽는 냄새 vs 닭 튀기는 냄새 vs 생선 굽는 냄새. 또 있다. 매운맛 라면냄새 vs 민물 매운탕냄새. 우열을 가릴 수 있겠는가. 한 참을 생각하고 선택을 하려 했지만 결국 선택하지 못했다. 난 우유부단한 타입임을 증명했다. 어느새 야근은 혼자 노는 힘을 키워주는 원동력이 됐다.
음식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식재료에 관심을 갖고 먹으니 변화가 생겼다. 아내와의 대화시간이 길어지고 조금 더 즐거워졌다는 것이다. 주중이고 주말이고 아내가 많이 하는 고민 중 하나가 바로 "내일 뭐 먹지?"다. 음식을 대하는 태도를 조금만 바꿨을 뿐인데 고민하는 아내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다. 퇴근 후 또는 주말에 자연스럽게 음식 메뉴를 이야기하면서 내가 몰랐던 부분들을 아내에게 듣는다. 아직도 모르는 게 수두룩하다. 계속해서 호기심을 갖고 배움의 즐거움을 이어가면 젊어진다는데 나의 두뇌 나이는 몇 살일까. 뭐 이런 수치화할 수 있는 기록들이 궁금하다.
아내와 대화를 하는 주제가 조금 다양해진 이후로 대화의 태도도 살짝 달라졌음을 느낀다. 한 사람이 말하는 동안 잘 듣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적절한 때에 대답을 하는 식인데 생각보다 존중받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분명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상대방이 말하는 동안은 끊지 않고 끝까지 듣고 공감하려 하는 적절한 끄덕임과 아이컨택. 단순히 말하고 듣는 관계가 아닌 존중하는 관계로 거듭난 기분이다. 그래서 대화가 즐겁다. 물론 끊임없이 대화를 하는 건 아니지만 짧고 강렬한 행복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오늘은 낮의 기온이 25도를 넘어가는 정말 놀라운 수치를 기록했다. 4월이 이랬나. 따듯한 바람을 맞으며 식당으로 걸었다. 게다가 오늘은 계란프라이 사다리 타기에 당첨이 됐다. 팀에서 급하게 만든 규칙인데 생각보다 즐겁다. 이 또한 즐거운 당첨이다. 오늘의 점심이다. 오늘은 녹색이 아주 넓다. 봄맞이 감자탕도 나왔고 핑크소시지도 오셨다. 반가운 옛 친구다.
오늘의 식판은 부추에 무게 중심이 쏠렸다. 내가 만든 프라이와 함께 먹었는데 얼래? 괜찮네 이 조합. 달걀프라이에는 약간의 소금을 쳤다. 이미 다른 반찬을 통해서 염분섭취가 가능하기 때문에 짠맛이 미미하게 느껴질 정도로 요리했다. 감자탕은 어찌나 부드러운지. 처음에 젓가락을 집었을 때 다 뼈인가 보네? 했다. 그런데 뼈 하나를 떨어뜨려 놨더니 살코기가 우수수 입으로 들어왔다. 뼈는 딱 두 개가 나왔다. 곧바로 고기옆에 김치도 하나 먹는다. 그럼 다음은? 밥이었다.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꼭꼭 씹어먹었다. 오늘은 다 먹는데 20분 정도 걸렸다.
밥도 야무지게 먹었고 이제 밖으로 나와 따듯한 순풍을 맞으며 천천히 사무실로 복귀했다. 사람들의 복장도 오늘은 많이 짧아졌다. 반팔 반바지를 착용해도 이상하지 않을 날씨였으니까. 회사에 반바지를 입고 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평소에는 편안한 복장으로 일하다가 회의나 격식을 차려야 할 때 분위기에 걸맞은 복장을 입는 것도 직원들의 사기를 높이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실제로 자율복장을 시행하는 회사원 분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하다.
지난주의 여유가 조금씩 가지고 다식 쪼여오는 시간들이 다가오고 있다. 오히려 적절한 집중력 향상엔 도움이 되는 환경이라고 본다. 한때 팀 내에서는 주 1회 정기적으로 연차를 사용하는 계획을 세웠고 실행했다. 그때도 일은 많았지만 일의 효율은 나쁘지 않았다. 2일 이상을 연속으로 쉬는 연휴기간 보다 오히려 중간에 하루 쉬는 게 한 주를 기분 좋게 보내는데 한 몫했다.
우리 사무실엔 여러 사람들이 오고 간다. 백색소음 같은 BGM이 언제나 사무실에 흐른다. 업무의 집중도가 좋아짐을 느낀다. 너무 조용하면 약간 눈치도 보이고 키보드 소리도 더 시끄럽게 들린다. 아무래도 세월이 만들어준 패시브능력이 아닐까. 모니터와 열심히 눈싸움을 한다. 눈을 덜 피로하게 하는 방법은 주기적으로 물 먹기와 쉬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사무실 밖에서 어깨 한번 돌리고 하늘 한번 쳐다보면 눈이 시원하고 기분전환에 도움이 된다. 거기에 커피나 녹차를 곁들이면 급속충전이 된다. 그래도 충전이 안되면 매일은 아니지만 종종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1등급 효율 가전제품처럼 열심히 일했다. 안 되겠다. 저녁으로 충전해야겠다. 오늘 저녁이다. 오예!. 갈치~. 이번에도 두툼한 갈치에 부추 한 젓가락 밥을 믹스한다. 오우 대단한데?. 좋아 좋아 갈치 세 토막을 가져온 나의 선택에 박수를 보낸다. 갈치를 3박자에 나눠 먹었다. 등과 배부분 가시를 제거하고 반쪽 먹고 반쪽 먹고. 한참 고독한 미식가라는 일본드라마를 재미있게 봤는데 내가 마치 그 주인공을 닮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된듯했다. 그 드라마의 배경음악. 아마 보신 분들이라면 그게 어떤 느낌인지 아실 거다. 호기심 가득한 어른이 음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모습이 그려진다. 두부조림은 햄과 조합했다. 예상보다 햄이 바삭하게 구워졌는데 두부랑 조화를 이루니 반전과 같았다. 햄이 얇게 썰어진 부분일수록 바삭한 식감이 다른 음식은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섰다. 고소해 고소해.
신나게 혼자서 드라마를 다 찍고 바나나로 막을 내렸다.
오늘은 저녁을 먹고 일찍 집으로 간다. 수요일은 가정의 날이니까. 가정을 지키러 가 봅시다.
<오늘의 Pick!>
- 얘는 정말 매력덩어리 부추무침, 생김새만큼 긴 여운을 남기는 갈치튀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