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메뉴] 식사 알림장
2023년 4월 13일 목요일
어제는 아내의 전화를 받고 첫째가 실내화 주머니를 잃어버렸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상태에서 저녁을 먹고 있자니 사실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 정리를 하고 퇴근하는 길에 아내에게 전화했다. 다행히 태권도 학원에 두고 왔다고 한다. 우리 첫째 귀염둥이는 어떤 한 가지에 집중하면 주변의 사물을 인지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장단점이 존재한다. 평소 궁금해하거나 좋아하는 놀이를 하면 푹 빠져버린다. 옆에서 말을 걸어도 잘 듣지 못한다. 대단한 집중력에 놀랍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집중력 때문에 동생의 말을 잘 들어주지 못할 때가 있다. 특히 첫째가 둘째와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 둘째의 항의가 빗발친다. 형아한테 "멈춰줘, 싫어"라고 반복했지만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며 속상해한다. 놀이 중간에 나 또는 아내가 가서 중재한다. 동생이 하는 말을 들어달라고 말이다.
얼마 전 첫째 담임선생님과 아내가 상담을 했다. 그 결과 우리에게 한 가지 숙제 같은 것이 생겼다. 첫째와 주말 아침을 시작할 때 꼭 약속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기분이 나쁘다는 표현을 하면 곧바로 멈추기. 그렇지 않고 계속하게 되면 그건 나쁜 행동이 되는 거야 약속". 초등학생이 된 첫째는 장난감에 역할을 부여하거나 동생과 놀 때는 리드하며 노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게 놀다 보면 자연스레 자신에게 유리하거나 상대방을 약 올리는 식의 장난이 시작된다. 이런 모습을 반복하니 장난꾸러기 첫째의 첫 번째 담임선생님으로 정말 좋은 분을 만났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담임선생님이 현명하다고 느낀 건 장난을 나쁘다고 표현하지 않는 것이었다. 두서없이 장난을 막는 게 아니라 장난은 유쾌한 것이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고 설명해주신다고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장난은 빛과 어둠을 가지고 있다. 장난을 통해서 멋진 친구를 사귈 수도 있고 때로는 싸움이 될 수 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장난에 대한 성격을 부드럽게 설명해 주시는 담임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스스로 학교도 가고 친구들과 잘 어울려 학교를 다니는 게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론 걱정도 많이 된다. 부모이기 때문에. 우리 엄마 아빠도 날 그렇게 키워주셨구나 생각하니 좋은 부모, 남편, 자식이 되기 위해 기본적인 건강을 잘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전 내내 생각이 너무 많았나 보다. 배가 고팠다. 짙은 미세먼지를 뚫고 식당으로 향했다. 오늘은 어떤 메뉴일까.
▼
▼
▼
역삼각형으로 안내를 해봤는데 너무 사무적이고 딱딱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대로 두겠다. 오늘도 너무나 행복한 밥상이었다. 말도 안 되는 토스트까지 있었다. 토스트는 개인의 취향을 존중했는지 딸기잼과 땅콩잼 두 가지가 나란히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모두 담아 딸기잼과 땅콩잼을 50대 50 비율로 펴 발랐다. 빵은 갓 구웠기 때문에 그 바삭함은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특히 기가 막혔던 건 가지와 열무김치 였다. 가지볶음인데 가지를 아주 터프하게 썰어 볶아주셨다. 입안을 가득 채울 만큼 크게 썰었지만 부드럽고 짭짤 달콤 그리고 가지의 향이 잔잔하게 남아있었다. 보라색 채소는 항산화 물질이요라고 말하는 대표적인 식품 아닌가. 사진의 조명이 조금 어둡게 나왔지만 짙은 녹색과 보라색이 식판을 고급스럽게 장식했다. 그리고 붉은빛 토마토도 항산화에 한 몫한다. 색깔 채소는 사실 모두 활성산소를 억제하고 우리의 피를 맑게 해 준다.
활성산소, 항산화, 디톡스 하면 떠오르는 게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ABC주스다. 사과, 비트, 당근을 갈아서 만든 주스인데 이거 한잔이면 피부는 물론이고 장 끝까지 청소하는 기분이 든다. 만들기도 쉽고 개인의 취향에 따라 비율을 달리해서 먹을 수도 있다. 아침식사를 대체할 만큼 든든한 한 끼로도 손색없으니 추천하는 메뉴다.
그리고 사실 토스트에는 계란이 숨어있다. 두 가지 맛을 품고 있어서 토스트계의 짬짜면 같은 존재였다. 한 번은 찰진 땅콩잼을 한 번은 부드러운 딸기잼을 번갈아 즐겼다. 욕심도 조절하면 확실히 이득이 되는구나 생각했다. 예상치 못한 조합에 점심식사 시간이 조금 길어지긴 했지만 오늘도 너무나 만족스럽고 감사한 점심이었다. 푸짐함 그 자체였다. 이렇게 먹었지만 오후에 식곤증을 호소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카페인은 한 모금도 섭취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사업을 한다면 식당부터 잘 알아봐야겠다. 밥을 잘 먹으니까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한 번에 날아간다. 물론 큰 발표나 보고가 있으면 다소 긴장은 되겠지만 성장하는 과정이지 않은가. 그럴 땐 그냥 에라 모르겠다 하고 덤비는 게 상책인 것 같다. 마지마 토마토까지 땡큐다.
오후엔 검토된 자료들을 모아 1차로 확인하는 작업을 했다. 필요 부분과 불필요 부분을 가르고 수정할 사항들을 체크한다. 수정할 사항들이 몇 가지 있지만 일단 크게 문제가 될 사항은 아니었다. 협의사항으로 남겨두고 내일 팀장님과 얘기를 해봐야겠다. 그리고 여유 있을 때 해야 하는 단순한 작업이 있는데 나머지 오후시간은 그 업무로 정했다. 1부터 5라고 하면 2에 해당하는 업무다. 하지만 중간에 누군가 말을 걸면 다시 할 수 도 있는 위험천만한 의외의 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습게 볼 일은 아니다.
지금껏 회사 생활을 하면서 절대 싸워서 이길 수 없는 한 가지 존재를 발견했다. 술은 우리가 이미 아는 존재다. 절대로 싸워서 이길 수 없다. 술에게 이긴 사람이 있으면 아마 인조인간이지 않을까. 사무실에도 그런 존재가 있다. 바로 모니터다. 아무리 성능 좋고 시야를 편안하게 위한다는 모니터를 써봐도 결국 우리의 눈은 피로함을 호소한다. 아무리 일이 잘되고 일하는 삶이 행복임을 느끼는 사람도 모니터와 반나절 눈싸움을 하고 있으면 "어우...". 가벼운 탄식이 절로 나온다. 정말 웃긴 건 눈이 피로하면 모니터를 보고 '눈이 피로할 때 대처법'을 찾는다. 그러면 다시 모니터를 보고 어떻게 하는지 설명을 읽거나 눈으로 본다. 모순이지 않은가. 일상에서 느끼는 모순은 의외로 우리 눈앞에 있다.
그 모순을 딛고 저녁시간과 맞닥뜨렸다. 올 것이 왔군. 주저 없이 향한다. 그렇다고 저녁시간 5분 전 1분 전에 가는 부정출발은 하지 않는다. 정시에 출발한다. 부득이하게 높으신 분이 먼저 가자고 하시는 경우는 예외지만. 자 오늘의 저녁이다.
오늘 저녁은 가벼운 컵라면을 하나 붙여봤다. 오늘 저녁의 키워드는 의외로 간장이다. 두부부침에도 간장 오징어 튀김에도 간장. 하나의 식판에 두 가지의 간장이 존재했다. 두부와 함께한 간장은 고소한 기름과 믹스매치가 됐다. 오징어와 함께한 간장은 상큼한 식초가 믹스매치 됐다. 두 음식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그래도 둘 중 하나를 선택하자면 오징어 튀김의 간장이 조금 우세했다. 간장에 마늘, 청양고추의 조합이 다른 반찬의 맛을 살려주는 서포트 역할을 했다. 다른 음식의 맛을 헤치기보다 살려주는 기분이랄까. 닭볶음탕은 초벌을 하고 나서 양념에 볶는 것 같았다. 일부러 닭날개만 골라봤다.
겉모습을 보면 양념이 덜 배어있는 듯해 보였다. 하지만 입에 들이대는 순간 생각보다 실속 깊이 풍부하게 양념이 스며들었으며 부드럽게 잘려나가지만 의외로 살을 쫀득했다. 닭날개 발골작업은 순식간에 종료됐다. 잘 익은 수박에 약간의 칼집만 내도 쩍! 하고 갈라지듯 닭 날개도 닭봉과 두 개의 뼈가 쪽 하고 떨어져 나갔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체력을 증진하기 위한 인터벌 트레이닝에 적합한 식단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운동 영역에 프로가 아니고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비췄을 때 적합해 보인다는 의견이다.
저녁식사 속도는 점심보다 느리다. 먹으며 생각하는 재미도 있고 복잡해지는 시간을 떠나 조용한 곳에서 식사를 한다는 감사함을 오랜 시간 만끽하고픈 욕심 때문이다.
식당에도 엄연히 역할이 있다는 걸 눈으로 실감했다. 사장님의 진두지휘로 일하시는 분들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해할 것을 구분했다. 본인이 맡은 일은 책임감 있게 하며 손님들이 식사를 하는 도중에 피해를 줄 만한 행동이나 손님의 동선에 중첩되지 않도록 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손님들이 어떤 반찬을 많이 선호하고 필요로 하는지 예측하고 즉각적으로 반응해 주신다. 결단력은 무릇 맛있는 반찬에도 녹아있다. 정도가 이래서 중요한가 보다. 황사로 뒤덮여 코 끝에서 모래냄새가 나는 상황에 기분이 언짢아졌는데 훌륭한 식사가 있어 잊을 수 있었다.
오늘도 감사하고 행복한 식사시간이었습니다. 사장님 이모님 감사합니다.
<오늘의 Pick!>
- 딸기반 땅콩반 토스트, 오징어 튀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