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한끼] 오늘의 점심메뉴 저녁메뉴
2023년 5월 25일 - 여운
직장에 다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진짜 내 시간에 대한 가치는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취업 후 현재까지 인생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냈다. 해가 떠있을 때 들어가면 달이 뜬 밤에 퇴근한다. 이런 현실을 10여 년간 반복하고서야 탈출에 대한 욕망이 피어올랐다. 안 그래도 지금 내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 떠올랐다. 쇼생크 탈출이다. 이 대작을 10번 정도 봤다. 정말 신기하게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회사라는 공간에서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내 모습. 생색만 가득하고 속은 비어있는 보상이 수두룩하다. 그래도 사람들이 모여 지내는 곳이라 희로애락은 있다. 이곳에서 탈출은 쉽지 않다. 당장 탈출해도 또다시 어딘가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은 마찬가지다. 회사가 언제나 밉고 싫은 건 아니지만 회사가 날 쫓아내기 전에 생존을 위한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커지고 있다. 나 스스로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찾고 만들기 위해 매일 반복해서 묻는다.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이며 나를 자랑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 회사에서 오랜 경력을 쌓고 관련 업무를 잘하는 건 매력적이지 않다.
자기경영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읽다 보니 한 가지 공통적인 의견이 있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에 매진하려면 돈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 반대로 생각하면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에 매진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환경은 누구나 바라는 환경일 거다. 나는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다. 그것이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지 않을까.
오늘 점심은 대장님께서 사주셨다. 두구두구두구. 짬뽕이다. 오랜만에 먹는 짬뽕이라 눈앞에 그려진 광경에 아주 기분이 좋아졌다. 감사하고 즐겁게 먹었다. 역시 탕수육은 바로바로 먹어줘야 최상의 맛을 낸다. 중국집이나 양꼬치집에 있는 짜샤이는 생각보다 내 취향이다. 그릇이 작아 보이지만 생각보다 큰 그릇에 짜샤이를 그득하게 담았다. 같이 먹으려고 담았는데 아무도 드시질 않았고 결국 내가 다 먹었다. 탕수육 소스도 맛있었다. 예전부터 중국요리를 시키면 탕수육에 비해 소스가 매우 많이 왔다. 반은 먹고 반은 버려야 했기 때문에 맛있게 먹었지만 버려지는 모습은 씁쓸하기만 했다. 그런데 이곳은 노하우가 있으신지 적당한 양의 소스를 나눠주셨다. 깔끔하게 먹었다. 사진으로 보면 나만 먹기 위해 차려진 한 상 같네.
신나게 먹고 진득하게 다시 업무에 돌입했다. 일단 주어진 일은 책임감 있게 완수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을 한다. 온종일 내 인생의 방향을 고민하는 건 과욕이고 의미 없는 시간으로 흘러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고민의 울타리를 벗어나 현실로 돌아오는 과정 또한 내 인생에 보탬이 될 거다. 정말 열일했다. 한 장씩 채워나갔다. 그럴 때가 있다. 업무도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는 것. 양은 차후의 문제다. 여차저차 저녁 먹을 시간이 됐다. 이렇게 조금만 집중하면 시간은 금방 흘러간다. 오늘의 저녁이다. 미역국과 미역줄기 무침은 번갈아 가면서 하루에 한 번씩 꾸준히 나왔으면 좋겠다. 피로해소도 되고 피도 맑아진다. 돈가스와 청양고추를 인사시켜 줬다. 적당히 매운맛이 느끼함도 가라앉혀주고 입맛을 돋워준다. 사실 이 정도면 입맛을 끌어올릴 필요는 없지만 괜찮은 조합이다.
오늘은 첫째 귀염둥이 친구 생일잔치가 있었다. 첫째 귀염둥이가 처음 시작했는데 아직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다만 한 가지 걱정스러운 건 점점 커지는 규모와 준비사항들이다. 사실 첫째 생일파티를 야외에서 해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다. 우리 집엔 TV나 게임기가 없고 장난감도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집으로 초대하는 건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친구들의 엄마와 아빠분께도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집 앞 공원에서 조촐하게 생일파티를 계획했고 주된 목적은 아이들이 먹고 신나게 뛰어노는 데 있었다. 우리 집에서 생일파티를 한다면 5살 정도의 귀염둥이들이 좋아할 거다. 이런 이유로 야외 생일파티를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첫째 생일에 왔던 친구들이 차례대로 야외에서 생일파티를 한다. 심지어 날씨에 따라 날짜를 조정하기도 한다. 생일파티 덕분에 둘째와 막내 귀염둥이도 저녁을 해결할 수 있었다. 퇴근 후 곧장 아이들을 깨끗이 목욕시켰다. 곧바로 책도 읽었다. 가장 마지막에 잠드는 둘째가 오늘은 첫 번째로 잠들었다. 두 번째는 막내. 오늘의 마지막은 첫째였다. 일찍 잠들지 못한 이유는 왠지 아내가 없어서 그런 거라 예상했다.
아내는 내일 아이들이 먹을 반찬거리를 준비하기 위해 늦은 밤에 마트로 떠났다. 홀로 자유의 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잠시 후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저녁을 먹지 못해 야식이 먹고 싶다고 한다. 흔쾌히 수락했다. 저녁을 먹었기 때문에 최대한 가볍게 먹을 수 있는 메뉴를 고르기 위해 한참을 통화했다. 통화 끝에 내린 결론은 아래 사진에 나타나있다
마트에서 사온 회다. 두툼하게 썰어서 만족스러웠다. 특히 더 맛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어떤 분이 전화통화로 "회나 먹을까?" 하는 말을 듣자마자 고민은 접어두고 집어왔다고 한다. 죄송하지만 잡은 순서가 그러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오늘은 야식으로 하루를 든든하게 마무리했다.
< 오늘의 Pick! >
- 짬뽕엔 탕수육이지, 오랜만 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