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한끼] 한끼에 모든걸 담다
수일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간단한 메모로 대체하며 지냈다. 그리고 지난주엔 충격적인 소식도 들었다. 팀원의 퇴사. 개인의 선택이기에 존중한다. 그럴 수 있어 그럼. 그렇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현실적인 문제를 보고 있었다. 앞으로 생길 업무부하가 어떨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 자릴 대체할 사람이 곧바로 보충되면 좋으련만.
오랜 시간 동안 고민을 했다며 미안함을 감추지 못하는 동료의 모습. 그동안 겪었던 불편함과 심리적 압박의 최종 탈출구를 퇴사로 결심했던 것이다. 강도 높은 업무량 때문에 다른 팀원과 마찰이 잦아지는 문제는 늘 겪고 있는 일이었다. 주변에서도 큰일이 아니라는 식으로 보고 있다. 사실 정도를 나타내기에 어려운 건 사실이다. 어떤 사람은 10가지 일을 해도 못 견디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투덜거리며 견디고 어떤 사람은 조용히 견딘다. 개개의 성향에 따라 살아온 환경에 따라 반응이 제각각이다. 보편적인 선은 있지만 그 만 저도 정답이라고 할 수 없는 애매함이 그저 그런 상황이라고 단정 지어 버리는 현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생기는 긴급업무도 지치게 만드는데 한몫한다. 누군가 급하다는 이유로 우리는 그에 상응하는 대응태도를 갖춰야만 한다. 투철한 봉사정신이 필요하다. 나는 사실 그런 업무에 많이 겪어보지 않았으며 그런 일이 있다고 한들 감정적인 요동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감정의 변화는 사람이 만든다. 업무는 하면 되고 최선을 다했을 때 되지 않는 건 내 능력이 거기까지이기 때문이다. 이 분야에서 난 아직 전문가가 아니다. 고수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수의 수준을 요하는 일을 곧잘 하지 못한다고 기분이 나쁘거나 하지 않는다.
퇴사하는 사람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쫓기듯 살아온 공통적인 상황은 크게 마음을 울렸다. 쫓기고 있다면 50%를 완성해서라도 제출한다. 물론 최선을 다 했다는 전제조건이다. 그리고 그게 속이 편하다는 걸 이곳에서 깨달았다. 남의 돈 벌자고 일하는 곳에서 마음이 불편한 게 얼마나 큰 악영향인지 이직 또는 퇴사를 경험한 직장인이라면 알 것이다. 자신의 불찰이나 실수보다는 상황의 악화를 먼저 손꼽는다. 내가 혼자였더라면 속 편한 회사로 이직을 준비했을 것이다. 급여가 조금 적더라도 마음이 편하면 급여가 무슨 문제겠는가. 오히려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질 거라 생각한다.
2023년 7월 18일.
비 오는 날 다른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비 덕분에 습기가 가득해서 그런지 식당 안은 에어컨이 아주 세게 가동되고 있었다. 천장형 에어컨이 내 등과 팔뚝을 시원하게 했다. 뜨끈한 국물을 먹으니 추운 것은 금세 잊혔다. 아이들이 있었다면 아마 그 자리로는 가지도 않았을 그 모습 생각하며 신나게 밥을 먹었다. 이 한 그릇을 먹는데 필요한 돈은 9,000원이다. 가격이 정말 많이 올그린 했다. 설렁탕을 먹는데 거의 만원이 드는 것이다. 외부 음식을 먹으면 자주 느껴지는 가격의 부담에서 벗어나고픈 욕심이 든다. 오늘도 고민한다. 식사에 주목하는 이유는 나의 생존능력을 키우는 자극제가 되기 때문이다. 너무 어렵게 생각해서 그런가.
변함없이 식사를 대하는 내 마음은 똑같다고 자부한다. 식사를 먹는 감사함과 이 음식에 땀 흘린 분들의 노고가 전해진다. 그래서 정말 비위생적이거나 불친절하지 않으면 음식에 대한 비판을 잘하지 못한다. 비위생과 불친절은 요식업에서는 절대적으로 필요악이다.
2023년 7월 20일.
머리가 띵한 느낌이 든다. 조금 일하다가 사무실 밖으로 나가 걷다가 다시 자리로 돌아오길 반복한다. 약간의 메스꺼움도 느껴진다. 물을 먹고 다시 밖으로 나가 회사 주변을 한 바퀴 걷는다. 에어컨 바람에 너무 오래 노출되어 있던 것이 문제였을까. 간질이듯 미약한 메스꺼움이 지속됐다. 아마 냉방에 장시간 노출된 문제로 일어난 일이란 걸 식당을 가면서 알게 됐다. 점점 그 불쾌한 느낌이 사라졌다. 눈앞에 식판이 있을 땐 이미 잊혀 있었다. 호박죽까지 덤으로 먹었다.
사실 덥거나 습하거나 우리 인간에게 극한의 환경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너무 뜨거워서 난리 너무 비가 많이 와서 난리. 지구가 아픈 걸 보면 우리가 먹어야 하는 식생활에도 변화를 가져올 필요성이 느껴진다.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는 식단말이다. 육류의 소비를 줄이고 가공식품보다는 친환경 식재료를 섭취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문제가 있다. 현실적인 수요와 공급이 많이 않을뿐더러 비용적인 문제도 거론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람들의 입맛까지 고려한다면 이러한 식당에서 적용하기엔 다소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점진적인 변화가 필요하고 중요하게 여겨진다.
우리 건강에도 오히려 플러스가 될 것은 분명하다. 육체노동이 많이 필요한 분이라면 고기 같은 큰 에너지원을 섭취하는 게 유리하다. 그 외에 사무직이나 큰 발표를 앞둔 상황에서는 소화에 소비되는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줄여야 업무의 효율이 높아진다. 따지고 보면 지금껏 나는 거의 육체노동을 한 수준과 다름없을 정도의 에너지를 섭취해 왔다. 입력이 출력보다 많으니 뱃살이 나오는 건 불평할 수 없는 사실이 되어버린다. 많이 먹는 대신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약간의 운동을 추가로 하고 있다. 회사 주변 왕복 20분 거리 걷기다. 너무 뜨거울 때 최대한 그늘을 활용한다. 주변에 쇼핑몰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건물이 만들어준 그늘을 십 분 활용한다. 비가 적당히 오는 날도 주변을 한 바퀴 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는 절대 피한다. 책을 보거나 간단한 게임을 한다. 이럴 때 시간은 아주 잘 흘러간다. 어느 새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말이다.
2023년 7월 21일.
일에 대한 고민이 날로 늘고 있다. 회사에 대한 일은 40 개인적인 일에 대해선 60의 비율로 고민학고 있다. 재작년부터 느끼지만 회사일에 최선을 다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만족감과 불편함이 늘 존재했다. 회사일에 최선을 다 하는 건 개인의 역량을 키울 수 있고 다양한 경험 그리고 임무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다. 개인적인 일은 이 회사가 날 필요로 하지 않는 순간이 왔을 때 또는 그 이전에 스스로 나갈 수 있는 역량을 키우기 위한 일이다. 4:6의 비율이 적절해 보였고 업무 시간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하고 탐색했다. 곧바로 실행할 수 있는 건 찾지 못했다. 사실 한 두 개쯤은 찾았지만 보이지 않는 걱정과 두려움 그리고 효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뒤엉키면서 하지 못했다. 이럴 땐 참 겁쟁이가 된다.
무엇보다 일이 바쁜데 다른데 집중하는 모습을 아내에게 보이기 싫었다. 행복하자고 하는 고민이지만 현실적인 고단함에 지쳐있는 아내에게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내와 야식을 먹을 때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편이 훨씬 더 좋은 방향으로 대화가 흘러갔다. 그렇기 때문에 충분한 고민 끝에 얻어진 결론이 아니라면 입 밖으로 툭툭 던지지 않는다. 사람의 신뢰가 떨어지는 문제도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 현실적인 건 곧 아이들의 방학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매일 뭐 먹지 하는 고민과 어떻게 즐거운 시간을 보낼까로 고민할 모습을 상상해 본다.
사실 매일 찍어두는 식판사진. 처음엔 그냥 업로드하는데 만족했다. 내가 먹은 음식이지만 왠지 다른 사람의 식판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이 사람은 오늘 이런 음식을 먹었군. 이제 조금 써봤다고 다른 방법을 꾀하고 있다. 아직 뾰족한 수가 나온 건 아닌데 이왕이면 함께하는 기분을 느끼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읽고 있는 '장산의 신'이라는 책을 보면 성공적인 이자카야 운영에 필요한 건 결코 대단하고 특별한 음식이 아닌 손님을 즐겁게 하는 마음이었다. 손님을 즐겁게 한다면 아무리 외지고 작은 가게일지 언정 사람들을 그 가게를 기억하고 찾아와 즐겁게 식사를 즐긴다는 것이다.
저자는 손님과 소통하는 방법에 대해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프랜차이즈가 자신의 가게 옆에 들어선다고 해도 절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저자의 생각에 진심을 느꼈다. 프랜차이즈는 많은 비용이 들어가지만 영세한 가게의 경우는 비용이 적게 들어가며 다양한 아이디어를 시도하며 성장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강조한다. 모든 내용의 기본은 어떻게 하면 손님을 즐겁게 할 수 있을 거다. 자기 개발서지만 만화책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몰입감이 좋은 책이다. 그리고 장사의 신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완독을 하지 않고도 느낄 수 있다.
내가 찍어 올리는 식판의 사진도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민하고 실행하는 일이 즐거워진다면 회사 생활도 덩달아 더 즐거워 질거라 확신하다. 그렇기 때문에 식판사진을 매일 찍어두고 고민한다. 내가 만든 음식은 아니지만 음식을 생각하는 마음가짐이나 생각들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어떻게 표현을 해볼까. 사실 메뉴들도 어느 정도 기간이 되면 반복된다. 그렇기 때문에 소재가 항상 새롭지 않고 순환하는 형태를 갖춘다.
맛집을 가서 예쁘게 사진을 찍으며 이곳의 분위기와 위치 서비스 친절함을 논하기에는 너무 일상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곳을 찾아가 밥을 먹을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아내와 대화를 할 때야 비로소 최근 3일 동안 자주 나왔던 반찬이 무엇인지 어떠한지 가격이나 제철여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우리의 삶에서 빠지지 않지만 반찬과 식재료를 가지고 대화를 나눈 건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좋은 점은 아내의 고민에 한 발짝 다가갔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보다 친근해졌다고 해야 할까.
식사로 인생을 배우고 있다. 같은 음식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짜고 맵고 싱겁고 맛없고 마음에 들고 등등 다양한 반응을 볼 수 있는 실험적인 측면도 있다. 음식은 내게 즐거움을 준다. 음식에게 받은 즐거움을 이제는 나눌 때다.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