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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한끼-15] 점심 저녁 메뉴...고통이 무조건 나쁜건 아니더라

솔트리오 2024. 3. 22.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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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과 이번달은 대부분 어려운 상황에서 틈나는 시간에 쓴 글이다. 여러 날에 걸쳐 쓰다 보니 하나의 글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산만하기 그지없었다. 기록을 위한 기록이었다. 이렇게라도 기록한 덕분에 산만했던 정신을 반듯하게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정리도 그때 그때 해야 정리하는 맛이 난다. 하루씩 밀리고 쌓이면 정리 또한 일이 된다. 어렵게 쓴 글의 대부분은 '쉬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내고 있다. 틈새가 없는 상황들이 글을 만들어낸 소재이자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종합적으로 따져보면 결국엔 나의 능력이다. 업무처리 방식에도 성격이 반영되는 점은 어쩔 수 없다. 두 개 이상의 업무가 동시에 생기는 일이 많았고 이것이 쌓여 업무들 간 오버랩이 길어지다 보니 체력적으로도 지쳐갔다. 어쩔 수 없다 생각하면서도 어려움을 잘 견디면 확실한 보상은 있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이 분야의 후배에게 노하우를 전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미래를 생각하면 스트레스받아가며 미련할 만큼 봉사하는 시간들이 안타깝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감정에도 체력이 있다. 여기저기 상처가 생기고 굳은살이 생기듯 감정의 피부도 단단해지고 체력도 좋아지는가 보다.
 
 
퇴근길엔 문 닫힌 가게들도 많이 본다. 불 꺼진 상가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이 정도 고생으로 투덜거리냐, 아직도 요령이 부족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없으면 60%의 완성도를 가지고 시작해 볼 법도 한데 처음부터 90% 완성도를 만들려다 보니 스스로를 지체게 만든다. 몸에 배어있는 습관이고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고집이다. 이 고집을 조금만 내려놓아도 삶의 피곤함은 덜 어질듯 했다. 개선하는 차원에서 일이 많아도 내 몸상태에 따라 간혹이지만 용감하게 칼퇴한다. 처음이 어려워서 그렇지 경험이 쌓이면 이 또한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 될 거라 믿는다.
  

시름을 잊을 수 있겠는가.

 

3월 초. 지방 출장을 다녀왔다. 그리 긴 일정은 아니었지만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이해됐다. 물론 이곳에서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문제점과 참고할 만한 결과물도 봤다. 사무실 업무가 대부분인 내게 견학은 새로운 경험의 문이다. 낯선 곳의 공기도 마셔보고 내가 일하는 환경과 얼마나 다른지 느꼈다. 마지막날은 맛있는 음식으로 마무리했다. 홀로 사무실에서 벗어났지만 마음 편하게 먹는 순간이 있어 감사했다.

 

 

혼자 타지에 간다는 건 정말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옛 어른들의 말씀에도 있듯 집 나가면 고생이듯 생경한 환경이었지만 덕분에 세상을 넓게 바라보고 반대로 나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생각보다 세상은 아주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웃는 사람들은 보기 어려웠다. 간혹 통화 중  웃기는 하지만 형식적 웃음뿐이었다. 어릴 적 생각엔 왜 어른들은 모두 심각해 보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기나긴 세월이 흘러 내가 그때의 어른들처럼 되어보니 한 마디로 답 할 순 없지만 자연히 그렇게 흘러왔다.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나인데도 말이다.

 

 

어른 나이를 먹으면 자연히 그렇게 되는 건가.

 

 

영원한 인생은 없다. 회전목마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는 게 인생이지만 언젠가는 종착점에 다다른다. 종착점에 다다를 때 웃는 얼굴이고 싶다. 억지로라도 웃는 얼굴을 해본다.

 


 

 

횡당보도를 건너려 서있었다. 생각보다 바람은 차가웠고 아침에 코트를 입고 오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는 기분 좋은 칭찬이다. 걱정과 긴 강으로 만들어진 불쾌한 감정이 조금씩 누그러졌기 때문이다. 밝게 빛나는 거리의 조명은 더욱 선명하고 깨끗하게 보였다. 오늘따라 길거리도 깨끗해 보였다. 신호가 바뀌고 길을 건넜다. 술 한잔 드신 분들도 보이고 나처럼 일이 끝나고 퇴근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강아지와 산책을 하는 사람들도 보였고 사람들의 대화소리도 잘 들렸다. 나와 상반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속 편하게 자문자답을 하는데 이런 대답이 나왔다. "어려운 상황이 나쁜 것만은 아니네". 철학적 성찰이 높은 분들이 왜 고독을 즐기는지 왜 고독이 필요한지를 설파하는 이유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었다. 그간 편안해서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이제야 나타났던 것이다. 어려운 상황을 반복해서 겪지만 하나씩 이겨내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데 혼자만의 시간을 활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름을 날리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아니지만 투덜거리고 걱정하는 시간들로 인해 그 반대면을 자세하게 들여다보는 계기가 만들어졌고 왠지 모를 뿌듯함이 생겨났다.

 

 

삶이라는 게 정답은 없지만 흘러가는 원리는 변치 않는다.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을 겪는 건 타인의 마음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재료가 된다. 거칠고 어려운 환경에서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아량이 넓은 이유가 바로 이런 것 아닐까. 영혼 없이 "힘내", "할 수 있어"라는 말은  넘어져도 스스로 일어서게 할 수 있는 최선의 응원이 아니었다. 술 한잔과 맛있는 음식이 그 마음을 풀어줄 거란 생각도 오해였다.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큰 어려움은 작은 일에서 시작한다. 때문에 작은 것부터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게 자립의 시작이고 최선의 방법이다.

 

 

매일 풀코스-1

 

매일 풀코스-2

 


 

 

사무실로 복귀하고 좋은 기분이 담긴 맛있는 음식 사진을 찍는다.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밥은 양을 줄였는데 반찬은 여전하다. 배고픈 상황에선 여전히 음식에 나약한 모습이다. 체중감량 식이조절이 어려운 건 경험한 사람이라면 잘 알 거다. 다행인 건 몸무게는 크게 변하지 않았고 배탈이 나지도 않았다. 내 인생에서 매년 한 두 번은 크게 탈이 난다. 살살 배가 아픈 게 아니라 갑자기 배가 아파서 난감해지는 경우 말이다. 정확하지 않지만 돼지고기를 먹고 탈이 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회식에서 삼겹살은 저절로 덜 먹게 된다. 되도록 살코기가 많은 부분을 골라 먹는다.

 

 

이런 걸 보면 아내는 소화기관이 정말 건강하다.

 

매일 풀코스-3
매일 풀코스-4

 


 

 

나는 잡지를 좋아한다. 공들여 만든 디자인과 다양한 내용 그리고 중간에 하나씩 들어간 사진의 조합이 마음에 든다. 특히 얇은 두께의 핸드북을 선호한다. '좋은 생각',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많이 즐겨 읽었다. 정말 좋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네모나게 정돈된 문단 모양은 읽어보고 싶은 마음을 자극한다. 뉴스 기사 내용에도 좋은 글이 많지만 잡지에 실린 글의 깊이나 표현은 새롭다. 사진옆에 글이 배치되어 있을 때 읽기 편하고 글과 사진이 조화롭다 보니 읽는 속도감도 좋다.

 

매일 풀코스-5

 


 

 

곧 있으면 생일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생일은 더더욱 엄마, 아빠께 감사한 날이고 부모가 되는 과정의 어려움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날이 됐다. 매일 싸우고 혼나는 세 귀염둥이를 키우면서 부모가 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느낀다. 뭐든 좋은 게 좋은 거야 하고 가르쳐주면 정도를 모르고 무조건 안되라고 선을 긋는 일 또한 아이의 마음이 자라지 못하게 한다. 정답이 없으니 어려울 수밖에 없고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건 더 이상하다. 정답이 없는 게 오히려 불공평 불공정을 예방할 수 있는 이유가 될 수 있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귀염둥이들 마다 대화를 하는 방법도 조금씩 다르다. 첫째와 대화를 하던 도중 아이의 생각을 듣고 싶을 때는 나의 상황을 먼저 이야기한다. 둘째는 내게 와서 먼저 이야기해 준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걸 먹었다며 내 앞에서 재잘거린다. 나는 둘째의 질문에 대답을 하고 질문한다. 막내는 울기 전에 표현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안 되는 게 있다고 무조건 울거나 떼쓰지 않도록 차근차근 알려주고 있다. 예를 들면 "물 주세요", "도와주세요" 같은 짧지만 중요한 말들이 해당한다.

 

매일 풀코스-6

 
그나저나 우리 깽깽 귀염둥이들이 씻는 걸 귀찮아한다. 매일 그런 건 아니지만 면허시험 때 등장하는 "돌발!"과 같은 당혹스러움을 만들어 낸다. 그나마 핑계라면 아빠랑 씻는다고 나의 퇴근을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 귀염둥이들 땀 흘리고 왔으면 바로 씻어야지... 귀염둥이들 아빠가 칼퇴할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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