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_계묘년/일상

친구라는 거울

솔트리오 2023. 9. 19.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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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사람 좋아하고 나를 잘 챙겨주는 고마운 친구다. 가뜩이나 매일 반복되는 야근에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순간이었다.

영상통화를 걸어온 친구와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했다. 친구 맞은편엔 제수씨가 있었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의 초췌한 모습이 아주 많이 부끄럽지는 않았다. 둘은 집 앞에서 가볍게 술 한잔하고 있었다. 그 자리가 부럽지는 않았다. 한 가지 부러운 건 그 둘이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었다. 보기 좋았다.

친구와 영상통화를 하면서 특별한 주제를 얘기하기보다 아이들은 잘 크는지 잘 살고 있는지 안부를 물었다. 다른 주제는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온종일 모니터와 전화를 끼고 살다 보니 머리가 멍해진 상태라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저 두 사람의 모습이 보기 좋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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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통화를 하면서 생각난 게 있다면 두 사람은 유튜브를 한다. 이 또한 특별한 주제를 가지고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아닌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기록하는 정도였다. 자신의 얼굴이 어떻게 나오든 개의치 않는다. 자기가 즐겁고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데 재미를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친구의 이런 모습이 좋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거침없이 실천한다. 규모에 상관없이 노래대회도 거침없이 나간다. 때로는 상금을 받아 좋은 일에 쓰기도 한다. 엄청 장난기가 많으면서 진지한 친구였다. 정확히 재목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에 등장하는 선배가 있는데 그런 류와 비슷하다.

5분이 채 걸리지 않는 영상통화를 마치고 다시 모니터를 응시했다. 이렇게 일해서 뭐 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생각보다 내 업무 실력이 많이 성장했네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통화를 마치고 보니 "즐거워 만족스러워!", "조금 더 고생하면 좋은 일이 있을 거야!"라는 말보다 오랫동안 야근으로 골골대고 있다는 말만 늘어놓았다. 내 진심이 친구를 통해서 나와버린 것 같았다. 거울을 통해 비치는 내 모습도 글에 나타나는 내가 아닌 모습이 친구와 몇 마디 나눈 대화로 진짜 내가 선명하게 그려진 기분이랄까.

요즘에 읽고 있는 책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어떤 일을 시작하는데 흔들리지 않는 기초를 만드는 과정의 첫 단계가 정체성을 찾는 일이라는 것이다. 가끔은 그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 과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름대로 작은 실천을 하면서 언제 어디서든 성취감을 얻기 위한 씨앗을 뿌리는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지만 어딘가 모르게 부족하다는 생각은 저버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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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인 건 30대가 되고 나서 마음의 공허함을 채워가는 방법 몇 가지는 찾았다는 것이다. 독서, 메모, 아내와 대화, 아이들 바라보기, 아침운동이다.

독서는 작가의 생각을 읽고 다시 생각할 수 있다.

메모는 스쳐가는 내 생각을 적을 수 있어서 나름대로의 영감을 얻는데 도움을 준다.

대화는 내 생각을 적절한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고 상대의 표현방법이나 감정을 전달받을 수 있다.

사진 속 아이들을 보며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아침운동은 정신적 신체적 우울감을 씻어낼 수 있다.

현재까지 찾고 꾸준히 하는 마음 살피기 방법이자 내 이름이 적힌 도구들이다. 짧은 통화 후 느낀 감정을 적어봤다. 정말 오래된 친구인데 오랫동안 내게 많은 도움을 줬다. 과거에 나는 인복이 많다는 내용을 기록한 적이 있다. 그 친구도 내 마음속 확신의 나무뿌리 중 땅속 깊이 뻗어있을 것이다.

친구는 나를 볼 수 있는 하나의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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