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1. 김건모 스피드
초등학생 때다. 평일이면 집에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았다. 주말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일하느라 바쁜 엄마 아빠는 주말에도 출근하셨다. 그나마 주말 점심은 엄마가 해준 따듯한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렇게 홀로 보내는 시간에 익숙해진 줄 알았다. 그날이 아니었다면.
이른 저녁을 먹고 태권도 학원에 갔다. 차를 타고 가기도 하고 어쩌다 한 번씩은 걸어가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20분 정도 걸어야 도착할 거리였다. 겁 없이 주황색 가로등을 따라 어둑어둑한 길을 걸어갔다. 어느 날은 어떤 아주머니가 날 보며 걱정하셨다. 그럴만한 게 추운 한겨울에 슬리퍼를 신고 걸어갔기 때문이다. 그땐 뭐가 그리 귀찮았는지 태권도 학원에 신발을 신고 가는 건 용납하지 못했다. 특별히 바깥 운동장에서 체육활동을 하지 않는 이상 신발은 구석으로 미뤄뒀다. 발가락 사이로 오가는 냉기가 뭐 그리 좋다고. 그리고 집에 엄마 아빠가 없는 날도 그렇게 갔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 아빠에게 미안하다. 사랑받지 못한 아이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초가을쯤 태권도 학원에선 수련회에 간다는 소식을 전했다. 1박 2일 일정이었다. 정확한 장소는 기억이 나지 않으나 어떤 유스호스텔이었다. 엄마 아빠에게 안내문을 보여줬고 수련회에 가는 걸로 이야기가 끝났다. 출발전날 편한 옷을 챙겼고 당일은 운동화를 신고 태권도차에 올랐다. 인원을 확인하고 출발했다. 태권도 전체 인원이 가는 거라 북적북적했다. 다른 태권도 학원에서도 참여한 것 같기도 하고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았던 기억이다. 일정에 맞춰 움직이고 인원파악하기 반복했다.
그날 저녁 넓은 광장에 모였고 앞에서 음악에 맞춰 태권도 동작을 한다고 했다. 곧이어 큰 소리의 음악이 광장을 채웠다. 당시 최고의 유행가였단 김건모의 스피드다. 노래에 맞춰 태권도 동작을 시작했다. 동작을 하기 적당한 박자였다. 조명이 켜져 있었지만 침침한 기운은 여전했다. 나는 그때 알았다. 외로움은 사람을 움츠려 들게 만든다. 내 주위에선 신나는 음악이 가득한데 이상하게 전혀 신나지 않았다. 같이 갔던 태권도 친구나 형 누나들은 삼삼오오 모여 수련회에서 느낄 수 있는 짜릿함과 자율ㄹ 만끽하는 듯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나처럼 우두커니 서있는 사람이 또 있을지 말이다. 내 주위엔 그 누구도 없었다. 오직 노래만 흘렀다. 김건모의 스피드를 들으면 분명 신나는 노랜데 그때의 감정에 취해 조금 외로워진다. 아직도 그 여운이 남아있다. 혼자 있는 일이 익숙해져 외로움이나 심심함은 느끼지 않을 줄 알았다. 어두컴컴한 수련회 광장에서 들었던 스피드는 그렇게 외로웠다.
기억 2. 교양수업... 그 후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한 대학교 새내기 시절. 기대반 설렘반으로 가득했다. 내 생애 첫 교양수업이 외로움을 자극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조별수업이 있었다. 다른 과 4학년 선배 남녀 2명씩에 1학년 남녀 1명씩이었다. 짝이 잘 맞아 보기 좋은? 여섯 명의 조를 이뤘다. 4학년 형 누나들은 취업이 어렵다 어쩌다 하며 금세 친해졌다. 각자 처음 봤음에도 남녀가 모여서 그런지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조별로 발표 과제를 받았고 모일 날짜와 시간을 조율했다. 처음이라 그런지 각자 나름의 조사를 해왔다. 나 역시 간단하게 찾아보고 공부를 해갔다. 주제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낮선공 기는 생각보다 금방 사라졌다.
분명한 건 그 분위기에 나는 섞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것도 아닌데 단지 4학년이라는 이유로 가까이 가지 못했다. 타고난 기질이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기도 했고 연애에 관심과 노력은 가상한데 생각보다 결과가 좋지 못해 자신감이 부족했었다. 주눅 들어 있던 내게 말을 걸어도 속 시원하게 대답하거나 다음 대화가 연결되는 문장을 구사하지 못했다.
그때 난 정말 외로웠다. 혼자가 싫었고 혼자 있으면 도태되는 기분이었다. 친구에게 연락하고 새로운 모임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하면 외로움이 사라지고 나 혼자 구덩이로 빠지지 않은 기분을 유지할 거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를 조금만 더 사랑했더라면. 그래서 지금 나는 나를 사랑하는 연습을 어느 때보다 열심히 하고 있다. 후 지금의 내가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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