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을 마치고 장례식장을 나섰다. 띄엄띄엄 가로등이 어두 캄캄한 산책로를 걷는다. 이 길을 쭉 따라가면 집으로 갈 수 있는 전철역에 도착한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인적이 드물다. 높이 솟아있는 다리와 멀찌감치 있는 큰 대로에서 차들이 지나가는 백색소음만 무성하다. 오래전부터 조금 바쁜 일상을 살다 보니 조용한 길을 걷는 게 얼마나 유익하고 즐거운지. 저벅저벅 걸으며 여러 가지 질문을 하고 답을 한다. 만족감이 그득한 갈등 없는 토론. 자문자답이다. 홀로 묻고 답하는 자문자답과 잘 어울리는 건 메모다. 스쳐가는 말이나 생각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의 결과물 메모. 빈 공간에 채워진 한 줄이 주는 쾌감이 기가 막힌다. 살면서 그 누구한테 평가받지 않는 날을 세어보라. 학교에 다니고 직장을 다니거나 사업을 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