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_갑진년/세상에는요

결혼 후 생긴 긍정적 변화 세 가지

솔트리오 2024. 9. 24.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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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을 마치고 장례식장을 나섰다. 띄엄띄엄 가로등이 어두 캄캄한 산책로를 걷는다. 이 길을 쭉 따라가면 집으로 갈 수 있는 전철역에 도착한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인적이 드물다. 높이 솟아있는 다리와 멀찌감치 있는 큰 대로에서 차들이 지나가는 백색소음만 무성하다. 오래전부터 조금 바쁜 일상을 살다 보니 조용한 길을 걷는 게 얼마나 유익하고 즐거운지. 저벅저벅 걸으며 여러 가지 질문을 하고 답을 한다. 만족감이 그득한 갈등 없는 토론. 자문자답이다.

 


홀로 묻고 답하는 자문자답과 잘 어울리는 건 메모다. 스쳐가는 말이나 생각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의 결과물 메모. 빈 공간에 채워진 한 줄이 주는 쾌감이 기가 막힌다. 살면서 그 누구한테 평가받지 않는 날을 세어보라. 학교에 다니고 직장을 다니거나 사업을 할 때 늘 시험에 대비하듯 무언가 준비해야 한다. 숨 쉴만한 틈이 없다. 메모는 쉼의 결핍을 충족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분이 좋거나 나빠도 메모는 다 받아준다. 혼잣말도 마찬가지다. 끼어들지 않고 처음부터 말을 마치는 순간까지 모두 들어준다. 외로움과는 차원이 다르다. 외로움에 시달리면 이렇게 하지 못한다.

 



공기도 시원하고 풀들이 사락거리는 소리도 좋다. 근데 묻고 싶었던 질문을 순간 잊었다. 다행히 "아!? 뭐였지?" 하는 순간 운 좋게? 다시 생각났다.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장례식장을 벗어나 내게 물은 질문.

 



Q) 결혼 후 생긴 긍정적 변화는 무엇인가?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질문 같지만 제한 없이 답할 수 있는 자유로움은 생각보다 큰 즐거움을 선사한다. 자문자답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 누구의 반론도 없다. 설령 있다고 한들 목소리가 뒤엉켜 싸울 일이 없다. 자 일단 질문을 하고 받았으니 이제 답을 할 차례다.

 



▣ 긍정적 변화 첫 번째 : TV와 작별인사 한 것.

 



신혼 때다. 그땐 거실에 TV가 있었다. 주말의 시작과 끝은 TV였다. 특별히 보고 싶은 게 없어도 습관처럼 켰다. 간혹 TV를 켜두고 잠든 적도 있었다. 그러다 새벽에 잠깐 깨서 TV를 끄고 다시 잠들곤 했다. TV와 떨어지지 않던 하루. 그 앞에선 생각할 겨를이 없다. TV를 끄면 손님이 왔다가 모두 헤어지는 듯한 허전함이 느껴졌다. 허전함에 그제야 생각하는 기분이 들었다. 어릴 적 집에 혼자 있던 때가 많았는데 TV는 나를 무섭지 않게 달래줬다. 결혼을 하고 첫째 아이가 태어나자 TV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슬슬 재미없어지기 시작했고 습관적으로 리모컨을 잡지 않았다. 한두 개 정도 특정 프로그램만 본방사수했다.


결혼과 함께 우리 집에 왔던 TV는 3년이 조금 지나 집을 떠났다. TV에게 이별을 고했던 것이다. 함께한 세월에 정들었는지 새 주인을 찾아가는 순간 약간 뭉클? 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정말 잘 한 우리 부부의 선택이었다. 덕분에 아이들과 많이 어울리고 책과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TV 없이 지낸 지 6년 정도 흘렀다. 이젠 TV가 없어도 좋다. 주변에서 걱정해 주시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정말 전혀 심심하지 않다. 가전업계는 좋아하지 않을 일이지만 삶에 활력을 줄 수 있는 신선한 결정이다. 지금도 주변 지인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있다. 실천한 분들이 있다는 소식은 아직 없었다.

 



▣ 긍정적 변화 두 번째 : 책을 읽고 생각하고 한 줄을 쓰고 다시 질문을 하는 것.

 


과거 나는 게임, 술, 친구 그리고 운동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금액은 적지만 잦은 소비로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소비적인 일상이 지극히 자연스러웠고 소비를 하면 많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구나 하는 착각을 했다. 물론 정말 친구가 될 사람은 어떻게든 연결됐다. 결이 맞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지금의 아내를 만나 행복하고 잘 살아 보자고 격려하며 시작한 결혼생활. 이젠 혼 자 벌고 혼자 쓰는 게 아니었기에 예전처럼 행동할 수 없었다. 잘 살고 즐겁게 살기 위해 현명한 소비가 필요했다. 예전처럼 게임을 하고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돈의 액수가 확연히 줄었다. 무엇보다 육아를 하다 보니 생각 보다 세월이 빠름을 느꼈다. 아이와 함께 있을 땐 몰랐는데 모두가 잠든 시간엔 외로움이 몰려왔다. 물끄러미 잠든 아이를 바라보고 아내를 바라보며 나는 뭐가 그리 지치게 만드는가 생각했다. 부모가 되는 길은 이런 건가 묻기를 반복했고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보였던 그것. 바로 나를 아끼고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다. 가족을 위해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앞서야 하는 것이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었다. 그 생각이 들면서 허투루 보내는 시간이 아까웠다. 아이들이 어릴 때야 나를 찾아주고 도움을 청하기에 내가 도움이 되는 사람이구나 하겠지만 아이들이 다 크고 나면 반대로 아이들에게 묻고 도움을 청할 날이 오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서야 나를 찾아주지 않는 아이들을 미워할 순 없지 않은가. 스스로를 사랑하고 지키고 생산적인 소비의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게 동화책을 보는 것이었고 조금 발전한 것이 출퇴근길 책 보기, 매 모 하기, 자문자답 하기다. 세 가지나 찾았다. 특별한 장비가 필요하지도 비용이 들지도 않고 생각하는 즐거움을 알게 한다. 우주보다 큰 세계를 얻은 기분이다.


결혼을 하고 나를 찾아 떠난 여행길에 찾은 세 개의 보물이 있어 좋다.




▣ 긍정적 변화 세 번째 : 라디오 즐기기.

 



집안일을 하며 듣는 라디오는 꽤나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준다. 설거지를 할 때 듣는 노래와 사연은 설거지가 많아도 힘을 내도록 만들어 준다. 집안 정리를 하거나 빨래를 갤 때도 라디오 효과는 빛을 발한다. 차를 탈 때도 좋다. 라디오가 들여주는 노래에 맞춰 귀염둥이들이 따라 부르기도 한다. 세상 귀엽다. 꽁알꽁알 작은 입으로 노래를 부른다. 아이들의 노래를 들으면 궂은 날씨여도 기분은 맑다. 온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할 때도 가끔 라디오를 듣는다. 음악 채널을 골라 듣는다. 라디오 소리를 배경 삼아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시간은 마음이 편안해진다. 대화 내용도 다채로워지는 듯했다. 아이들이 나서서 학교, 유치원 심지어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이나 인상 깊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곤 한다. 집에 있는 주말엔 자주 라디오를 듣고 즐긴다. 그동안 왜 몰랐을까 라디오가 가족의 대화를 풍성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여기까지 결혼 후 일어난 긍정적 변화 몇 가지를 써봤다. 힘들다고만 생각했는데 그 사이사이엔 중요한 의미가 숨어 있었다. 앞으로 일어날 긍정적 변화를 기대하며 오늘은 여가까지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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