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_갑진년/세상에는요

마음이 편안해지는 말, 부모님의 한 마디

솔트리오 2024. 9. 20.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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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온 빗소리에 깨어났다. 어둠과 고요함으로 가득할 시간이지만 빗방울이 타닥 토독 소리를 낸다. 빗소리를 들으며 생각한다. 내일이면 다시 주말이네...




아이가 있기 전 힘들고 머리가 복잡할 때 휴식은 간단했다. "일단 여기까지 하자". 아이가 태어난 후 휴식은 저절로 생기지 않았다. 내 주변 곳곳에서 찾아야 하는 숨은 그림 찾깥은 존재가 됐다. 속으로 외친다 "내 시간이 필요해". 아내와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다. "애들 20살까지 딱 키우고 나머지는 스스로 하게끔 하자". 아이를 키우는 게 매일 비슷한 것 같으면서 다르다. 세상 그 어딘가 학교에 아이를 키우는 과목이 있다면 어려움이 덜어질까. 철없는 소리 같지만 때론 절실하게 느껴진다. 나를 키워주신 부모의 노력과 어려움을 헤아리기가 이렇게 어렵다니. 사랑해 엄마 아빠.



아이들과 살부비며 지낸 지난 시간은 너무 소중하다. 지쳐있어도 몸과 마음은 아이들 생각으로 '우선' 설정되어 있다. 설정을 바꾸려 해도 바뀌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표현하자면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은 자연스럽게? 자제된다. "그래 나는 다음에 하면 되지" 이렇게 말이다. 즐거운 것 좋은 것 맛있는 것을 보면 "애들이 좋아할 텐데" 한다. 세상의 중심에 내가 있지만 모든 일엔 아이들이 연결되어 있다. 이것이 아빠의 인생이고 청춘인가.



나이 먹어도 늘 보고 싶은 엄마와 아빠. 힘든 기색을 감추려 해도 조금만 살이 빠져도 금세 알아본다. 마치 아이들도 모르게 생긴 작은 상처가 크게 보이는 것처럼. 집, 회사를 반복하는 일상을 지내다 보면 정작 내 시간은 어디에 있을까 생각될 때가 있다. 무기력 해지고 어질어질한 기운이 내 주위를 맴돈다. 참고 있다가 엄마 아빠에게 전화를 건다. 보통 10분에서 15분 정도 통화하는데 주로 엄마 아빠는 내게 이렇게 말하신다.



"다~그런 거지 그런 거야. 눈 깜빡할 새 애들은 금방 크지. 너만 해두 벌써 아이 낳고 잘 살고 있잖아. 힘들어도 그러려니 그런가 보다 하는 거야. 조금만 지나면 애들은 각자 잘 살아가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그땐 같이 놀자고 해도 안 놀아줘 지금처럼 같이 있을 때 많이 안아 주고 칭찬도 많이 해줘"



여러 번 듣는 말이지만 그때마다 눈시울이 조금 뜨거워진다.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고 다른 말을 해도 머릿속에 남은 말은 지워지지 않는다. 결혼 전 엄마 아빠가 나와 함께 있을 때 내게 하고 싶었던 말이지 않았을까 싶다.



주말은 아침부터 신경이 곤두서 있는 날이 많다. 아침부터 서로 싸우고 울고 미워하며 등 돌리고 있다.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그러다 언제 그랬냐는 듯 나누고 챙겨주고 도와주고 깔깔 웃으며 잘 지낸다. 땅에서 하늘로 솟구치고 다시 땅으로 떨어지는 요란한 주말. 이런 모습 또한 지금 뿐이라 생각한다. 제삼자의 눈으로 보면 조금 귀여워 보이지 않겠는가.



내가 큰 우주를 삐뚤어진 망원경으로 볼지 초점이 잘 맞춰진 망원경으로 볼지는 내 선택과 마음가짐에 달렸다. 싸움이라고 무조건 나쁜 것도 아니고 칭찬이라고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다. 어떤 일이든 부정과 긍정이 섞여있다. 엄마 아빠가 늘 "다 그런 거야 그렇게 커가는 거지"가 무슨 의미인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른 퇴근 후 재미있는 일이 있다면 막내와 목욕하기다. 막내는 아빠랑 씻는다며 내가 올 때까지 어린이집에 다녀온 옷을 그대로 입고 있다. 유난히 웃음 많고 쾌활한 막내. 그만큼 성깔도 대단하시다. 작은 인형이 물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면 하루동안 쌓인 복잡한 생각이 싹 사라진다. 물기를 닦고 로션을 바르고 머리를 말린다. 그리곤 책을 고른다. 세 아이들은 각자 보고 싶은 책을 골라온다. 잠들기 전 책 보기는 하루의 마침표다.



노래가사 중에 사람을 우주로 표현한 게 있다. 그 '우주'라는 단어가 표현이 참 마음에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단어에 왜 애정이 생기는지 하나씩 알아가고 있다. 정답 같은 표현. 아이는 끝을 알 수 없는 우주와 같다. 과거부터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은 지구밖 우주를 알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고 있다. 지구와 가장 가까운 달을 오고 가는 일도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큰 일이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 보다 훨씬 더 큰 우주를 품고 달래는 과정이 힘든 건 당연한 일이다.



우주를 품었던 엄마 아빠가 해준 이 한마디엔 우주 그 이상이 담겨 있는 게 아닐까.



"사는 게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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