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_계묘년/일상

생명의 소중함 여섯번째 가족 구피야 즐거웠어

솔트리오 2023. 9. 6.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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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우리 집엔 여섯 번째 가족이 생겼다. 아주 작고 귀여웠고 아이들의 반응도 매우 좋았다. 이제 뛰다 못해 날아다니는 아이들을 붙잡아둘 수 있을 만큼 작은 생명이 지닌 잠재적 에너지의 크기는 가늠할 수 없었다.

여섯 번째 가족은 물고기(루피)다. 이름은 '귀여미'. 첫째가지어 준 이름이다. 첫째의 방과 후 수업 중 생명과학이 있었다. 그 수업이 끝나고 우리 집으로 데려오게 됐다. 전에는 움직이지 않는 식물, 과학원리를 이용해 만든 재미있는 놀잇감을 가져오는 게 전부였다. 첫째 덕분에 나도 집에서 처음 물고기와 생활하게 됐다.

대신 첫째에게 당부한 바가 있다. 매일 아침 인사하고 밥 주기다. 물갈이와 청소는 아내 또는 내가 하기로 했다. 자신의 물건도 소중히 해야 하지만 스스로 선택하고 데려온 생명이기에 잘 보살펴 달라고 했다.

루피는 키우기 쉬운 편이라고 한다. 생명을 돌보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하는 생각이었지만 인터넷에선 그렇다는  의견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우리 집에 왔으니 적당한 거주지를 훑어봤다. 아이들의 눈높이를 고려해 적당한 높이의 3단 책장 최상층에 올려뒀다.

아주 작은 민물 열대어지만 생명이 있다는 사실에 온기가 더해지는 기분이었다. 살랑살랑 헤엄치는 지느러미.  부드럽게 움직이는 모습이 내 눈에도 아주 신기했다. 밥 먹을 때는 어찌나 빠르던지 작은 입을 크게 벌리며 먹이를 먹는 모습도 귀여웠다. 귀여미(구피)는 8월 24일 날 우리와 가족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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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이 지나가자 타들어갈 듯한 열기는 조금 수 그러 들었다. 아침저녁은 쌀쌀했고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리곤 바쁜 일상을 보냈다. 쉬는 날이 됐고 시원하게 목욕을 마치고 나왔다. 그리곤 작은 어항으로 갔다. 그런데 구피가 이상했다. 몸이 옆으로 기울어진 채 헤엄을 치고 있었다.

"뭐야 왜 이렇게 있지? 죽은 건가?"

집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모습을 보니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리고 싶었다. 인공호흡을 할 수도 없고 마사지를 해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병원에 데려갈 수 도 없으니 답답했다. 집에 온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일이 생겼을까. 급한 마음에 응급조치라 생각하고 루피가 똑바로 헤엄치도록 손으로 살살 몸을 일으켜줬다. 스스로 웃기다고 생각하면서도 귀여미가 바르게 헤엄치도록 바로잡아 주고 싶었다.

"됐나?"

손을 떼면 다시 옆으로 누워서 한쪽 날개지느러미만 힘겹게 움직인다. 한참을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괜히 마음이 무겁고 속상했다. 누워서 지느러미를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왠지 괴로워 보였다. 마치 내가 물구나무를 서서 온종일 있는 기분이었다. 얼마나 어지럽고 피가 쏠릴까. 구피도 같은 느낌을 받았을 거라 생각한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부레에 이상이 생겨 제대로 헤엄치치 못하며 치료방법도 없다는 말만 나왔다. 눈앞에서 바등거리는 모습을 보니 어떻게든 살려주고 싶었다. 혹시 물이라도 갈아주면 다시 기운을 낼까 싶어 염소제거를 위해 하루 전에 받아놓은 수돗물을 가져왔다.

루피가 살던 물과 새 물을 1:1 비율로 섞어줬다. 조금 살아난 듯싶었지만 변화는 없었다. 그럼 밥이라도 잘 먹어보자 해서 아주 적은 양의 밥을 줬다. 밥도 먹지 않는다.

구피의 회복을 위해 억지를 쓰며 노력했지만 며칠 후 배를 보이며 물에 둥둥 떠있었다. 첫째는 이해할 수 없다며 속상해했다. 선생님이 시키는 데로 밥도 주고 물고 갈아줬는데 2년 정도 살거라 배웠는데 말이다. 어른의 말이라고 모두 맞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을까. 아내와 나도 그 질문에 대해 속 시원하게 대답해주지 못했다. 그저 다름을 알려주는 수밖에 없었다.

속상함을 같이 나누는 노력이 첫째를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첫째는 귀여미(루피)를 집안에다 수조에 있던 돌로 무덤을 만들어주고 싶어 했다. 집안에 그럴 수는 없고 돌무덤은 잘 무너지니 따듯한 흙에 보내주겠고 했다. 보일 때마다 속상한 마음이 생길 거라며 집 근처 나무밑에 묻어주기로 약속했다.

출근길에 집 근처 크고 잘 보이는 나무옆에 작은 구덩이를 만들어 귀여미를 묻어줬다.

"고맙다. 고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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