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_계묘년/일상

[오늘의 메뉴] 식사 알림장

솔트리오 2023. 4. 18.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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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18일 화요일

 

폭풍전야. 매우 큰일이 닥치기 바로 전 시기나 단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사실 폭풍은 아니어도 약간의 강풍이 불어 닥쳤다. 어쩐지 오늘 아침은 이상하게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았다. 눈앞에 둘째 귀염둥이가 있는데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숨이 막히고 얼굴에 피가 통하지 않는 듯 얼굴 전체에서 맥동이 느껴졌다. '뭐지 뭐지!! 컥....'. 눈이 떠졌다. 다행히 모든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숨은 잘 쉬어지지 않았다. 얼굴을 돌려보니 보드라운 게 내 목에 얹혀 있었다. 둘째의 다리였다. 그리고 뒤늦게 알았다. 숨이 막힌 이유는 둘째의 귀여운 다리였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 내 목을 짓눌렀는지 나는 힘겹게 다리를 바로 옆으로 옮겨두고 잠자는 둘째를 돌려주었다. 세상 편하게 잠든 우리 귀염둥이. 다리에 짓눌려 조금은 힘들었지만 잠든 모습은 여전히 사랑스럽다. 다음엔 빙글 돌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힘든 시간에서 벗어나 크게 숨을 들이켜보니 공기가 달콤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작다고 무시하는 태도나 생각은 아주 위험한 발상이라는 확신에 한 획을 그었다. 둘째에게 인생의 진리를 배운 샘이다. 그런 둘째를 위해 이번 주말엔 치킨을 먹어볼까 혼자서 상상 계획을 해본다. 시원하게 씻고 세수를 하고 집을 나선다. 오늘 아침은 촉촉했다. 우산을 쓰기도 안 쓰기도 애매한 비가 내리는 아침이었다. 분무 같은 비라고 무시하지 않고 우산을 펼쳐 들었다. 이런 비는 사람의 성향을 볼 수 있는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이 정도는 맞아도 괜찮아" 타입과 "이것도 비야 눅눅해져" 타입으로 구분해 본다. 오늘 아침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그냥 맞고 다녔다.

 

오늘도 대중교통을 신나게 이용했다. 한 적한 대중교통이 아주 좋다. 나의 출퇴근길 대중교통은 지옥철과는 거리가 멀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이 많지만 내 출근 시간은 언제나 여유롭다. 전철에서는 전자책을 보면 완전히 독서에 몰입하는 상태로 들어간다. 짧지만 강렬한 시간이고 내가 좋아하는 시간이다. 오전에 생길 약간의 에피소드가 생길 거라는 예감은 전혀 하지 못한 채 말이다. 공기의 시원함을 만끽하며 출처불명의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사무실과의 간격을 좁혀갔다. 도착했다. 먼저 사무실에 도착하신 부장님이 날 부르셨다. 내 자리를 지나 그대로 부장님께 갔다. 내가 작성한 자료에 대해서 물으셨다. 간단하게 설명드리고 이상 없이 오케이 됐다.

 

본격적인 업무시간이 됐다. 의문의 번호로 전화가 온다. 직장생활이 만든 가장 큰 변화는 모르는 번호에 대한 거부감이다. 혹여나 이 전화로 예상치 못한 일들이 펼쳐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긴장하게 만든다. 몇 가지 예상되는 시나리오를 머릿속으로 스케치하고 전화를 받아본다. 문제가 있긴 하지만 이 또한 그리 어렵거나 고민할 일은 아니었다. 메모를 간단히 해두고 문제해결에 돌입했다. 다행히 큰 문제가 아니고 자료 전달의 문제였기 때문에 난이도가 낮아 금세 해결할 수 있었다. 얼마 후 또 한 번의 진동이 울린다. 아는 번호다. 사실 아는 번호가 더 무섭다. 받아본다. 이게 안되고 저게 안되고 이렇게 저렇게 해서 안되고. 전화를 받고 대뜸 어렵다는 이야기부터 들으니 정말 문제일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간단한 자료조차 없이 말로만 제기되는 문제를 다룰 때는 업무의 이해도는 대폭 떨어진다. 급한 일들은 되려 그렇게 처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나중에 오해의 소지가 생기기 쉽다. 그런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귀찮고 번거롭지만 화면을 캡처하고 몇 글자라도 넣어 상대와 협의하기 위한 자료를 만든다. 이번에 생긴 일의 문제는 괜찮은 줄 알고 그냥 넘겼던 것이 후에 문제를 발생시키는 형태였다. 난이도 중에 속한다면 적정한 수준 같다. 오전 내내 전화를 붙잡고 이미 벌어진 일을 수습할 방도를 찾는다.

 

고민이 깊어지고 이리 보고 저리 보고 머리를 싸매어 생각한다. 일단 담당자와 몇 가지 방안을 생각해 검토를 진행했다. 세 가지의 문제를 두고 오전 내내 고민했다. 타임!. 점심시간이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부장님께 발생한 일의 상황에 대해 간략히 말씀을 드렸다. 점심 먹고 얘기해 보자고 하셨다. 문제를 입 밖으로 꺼내어 말을 하니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고 문제를 보는 시선이 조금 넓어진다는 기분이 들었다. 오늘의 점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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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이지요.

카레밥이다. 카레를 먹기 위해 잘 사용하지 않던 숟가락도 챙겨 왔다. 매콤하고 걸쭉한 농도의 카레가 잡곡과 어우러지는 밸런스가 아주 훌륭했다. 카레 한입에 취나물 청경채를 쏙쏙 해본다. 요새 나름대로 봄 식재료를 챙겨 먹어서 그런지 몸에 피로도가 많이 줄었다. 한 때는 종합비타민, 비오틴, 오메가 3, 히알루론산 등 몇 가지 보조식품으로 배를 채우듯이 먹었다.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는 체감하지 못했지만 상당히 오랫동안 먹어왔다. 몸에 큰 이상이 없다면 웬만한 영양소들은 기본적인 식사로 보충할 수 있다. 지금에서 그 효과를 느끼고 있다. 봄나물을 조금씩 챙겨 먹는 식사가 값비싼 보조식품의 구매를 줄이는데 한 몫했다. 오늘은 코다리 튀김도 아주 맛있었다. 양념이 과하지 않고 튀김가루도 뭉쳐있지 않아서 먹는데 튀김을 먹는 느낌보다 바삭한 코다리를 먹는다는 느낌이 강렬했다. 

 

맑은 육개장은 또 어떤가. 고기가 있지만 국물은 입안을 끈적하고 질리게 만들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보다 무가 굉장히 맛있었다. 아 또한 햄과 함께 볶아져서 나온 당근 또한 단맛이 강렬했다. 우리 둘째가 생당근을 참 좋아한다. 나박 썰린 당근을 먹어보니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았다. 뒷맛이 달큼했다. 요리에 들어간 식재료들에 조금만 집중을 해도 음식을 맛보는 시간이 제법 즐거워진다. 부엌에서 만들어지는 요리를 즐기는 방식이 단순히 맛이 있느냐 없느냐 택일하는 상황보다 훨씬 더 넓어진다. 음식의 맛을 연구하는 것, 특히 제철 식재료의 특징을 극대화시키려는 노력에 감사함이 느껴진다. 음식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닌 먹는 사람을 위한 진심을 담는 고귀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오늘은 매실차로 마무리했다. 시원하고 혀를 덮는 강렬한 단맛. 좋다. 그렇게 신나는 점심시간을 보내고 이제는 고민을 나눌시간이다. 부장님과 함께 논의를 시작했다. 오전 내내 전화를 붙잡아야 했던 그 고민덩어리들. 부장님께서 스윽 보셨다. 내 의견을 들어보시더니 "그럼 이렇게 하면 어때?"라며 몇 차례 물어보셨다. 관련 담당자와 함께 논의했다. 담당자도 "아 그렇게요? 음... 그건 가능할 거 같아요". 에?. 기나긴 동굴로 들어갔다는 생각에 답답해했는데 순식간에 길이 잘 다져진 터널로 변함을 느꼈다. 세상에 이렇게 간단한 일이었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 덕에 오후의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고민으로 깊어가는 주름살도 하나쯤을 덜 생겼을 것이다.

 

같은 일 비슷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복사 붙여 넣기로 일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디테일이 다르다. 때로는 복붙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전반적인 업무를 진행하는 방식으로는 아주 불량한 방식으로 생각한다. 업무에 따라 효율을 생각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가 하는 업무에선 그렇다. 그렇게 고민이 해결되고 나니 그 후에 걸려오는 전화들은 생각보다 거부감이 덜 했다. 어느 정도 노동의 강도를 겪었으니 그보다 낮은 강도의 압박은 부담으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딱 좋다. 커피 한잔 마셔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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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의 마무리와 함께 새 업무를 받았다. 수개월간 함께할 업무다. 어떻게 생겼는지 성격은 어떤지 궁금하다. 차근차근 알아가 보면 될 일이다. 오랜만에 회사원이라는 느낌을 받은 날이다. 이렇게 일을 했으니 즐거운 저녁시간은 아주 값진 보상이 된다. 오늘의 저녁을 보자.

저녁이고요.

제육볶음과 오이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상큼 시원 오이. 멸치 볶음. 튀기듯 볶음 멸치볶음을 아주아주 사랑한다. 튀김을 좋아하는 건가. 밥이랑 멸치랑 김치만 있어도 밥 한 공기는 가볍게 비워낼 수 있다. 다만 염분이 많기 때문에 섭취를 절제할 뿐이다. 오늘도 야무지게 밥 제육 계란찜 멸치를 조합해서 반복적으로 먹었다. 국물에 있는 두부를 낚아채 먹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우리 귀염둥이들 국에도 깍둑 썰어진 두부를 종종 넣는데 골라먹는 모습이 떠올랐다. 두부와 무가 오늘따라 너무 맛있다. 그래서 그런가 국물은 또 왜 이렇게 맛있는 거지. 국물까지 다 마셔버렸다. 이런 게 또 하나의 행복인가 보다. 어떤 음식이든 항상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나 자신이 좋다. 그만큼 건강하다는 증거고 감사함을 몸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니까. 사장님 이모님 감사합니다.

 

아내가 궁금해했던 샌드위치의 궁금증을 드디어 해결했다. 샌드위치는 사장님 따님이 하루 30개 한정적으로 만든다고 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미리 주문을 넣어둬야 먹어볼 수 있는 나름 스페셜한 메뉴인 것이었다. 샐러드는 요청해서 약간의 기다림만 있으면 먹을 수 있는 것과 상반되는 존재였다. 기회가 된다면 이번 주 금요일 저녁을 샌드위치로 해볼까 한다.

 

오늘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몇 통의 전화를 했는지 모르겠다. 이런 날이 가끔 있어야 한가한 시간이 더욱 간절해지는 것 아닌가. 부장님 덕분에 해피하게 일이 해결돼서 마음이 즐겁다. 더 큰일로 번지지 않고 수습하려 노력한 나 자신에게도 칭찬한다. 토닥토닥.

 

 

 

<오늘의 Pick!>

- 닭강정만큼 맛있는 코다리튀김, 상큼 발랄 오이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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