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29일 - 분리
어제는 우중충하고 너무 습한 나머지 우리 집 최초로 5월에 에어컨을 가동했다. 지난날은 잘 견뎠는데 집안에 귀염둥이들이 셋이 되니 집안의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는 기분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습한 건 견디기 힘들었다. 지구가 아프다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인지시켜 주면서 에어컨 가동을 앞당기는 모순적 태도가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에어컨이 가동되고 얼마 안 지나 막내가 잠들었다. 지난 주말부터 낮잠을 자지도 않고 밥도 제대로 먹지 않았는데 말이다. 막내도 습한 기운에 낮잠을 자는 건 쉽지 않았을 거라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에어컨이 없던 과거엔 시원한 물에 샤워하고 선풍기 앞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최고였다. 땀나면 다시 샤워를 하면 됐고 그것도 안되면 밖으로 나가 그늘을 찾았다. 불편했지만 지금은 느낄 수 없는 즐거움이 있었다.
이 날은 아이들에게 부침개를 부쳐 반찬으로 내주었다. 고소한 냄새로 가득해지니 기분이 좋아졌다. 아이들의 저녁식사가 끝났고 잠잘 준비를 하는 동안 에어컨으로 집안을 쾌적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이 골라온 책을 읽고 아이들을 재웠다. 아이들이 모두 잠들고 아내와 나는 야식을 먹었다. 저녁에 남겨둔 부침개 반죽을 부쳐먹었다. 그 곁엔 막거리도 있었다. 동네 마트에서 구입한 막걸리인데 990원이었다. 도전하는 의미로 새로운 막걸리를 먹어봤는데 아주 달달하니 생각보다 괜찮았다. 깔끔하게 각 1.5병씩 먹고 정리했다. 기름 때문에 뒤처리가 조금 오래 걸리긴 했지만 비와 부침개 그리고 막걸리는 균형 잡힌 조화임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오늘은 대체공휴일이다. 출근했다. 가족들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이들의 속상함이 가장 컸다. 아빠와 토요일, 일요일을 제외한 요일에 노는 일은 흔하지 않다. 연차를 정기적으로 쓸 수 없는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속상한 마음을 뒤로한 채 오늘은 차로 출근길에 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리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늘 막히던 곳은 덜 막히고 주차로 전쟁을 치르던 회사 근처엔 생각보다 여러 자리가 비어있었다. 막힘없이 주차를 한 후 천천히 사무실로 걸어갔다. 거리가 조용했다. 특히 지나다니는 차량이 많지 않아서 소음이나 매연으로 인상 찌푸릴 일이 없는 건 좋았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무실은 숲과 가깝고 공기가 좋은 곳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은 나의 이상을 자극했다. 느긋하게 사무실에 도착했는데 회의실에서 팀장님들이 회의를 하고 있었다. 마치 오늘 쉬는 날이 아닌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듯했다. 초창기엔 그런 모습을 열정이 가득한 분들이라고 해석했다. 지금은 한 단계 나아가서 저분들은 은퇴 후에 어떤 삶을 살게 되실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더 놀라운 일은 우리 집 앞엔 공원이 있다. 날이 좋으면 새벽까지 농구를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새벽 3시에도 농구를 하고 있었다. 팀장님들의 열정에 열정을 더한 그들. 그래도 새벽엔 잠자기를 추천합니다.
내 자리에 앉아보니 오지랖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부터 잘하자. 응?!.
휴일 출근은 정신과 신체가 분리되는 날이다. 신체는 회사에 있으나 정신은 집을 벗어나지 못했다. 일이 하기 싫은 이유는 이렇게 간단한 이유다. 기지개를 아무리 켜도 시원하지 않은 이 기분. 오전 내내 켜둔 화면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이들과 시원한 도서관에서 전문가들의 생각을 읽고 싶었다. 회사에선 그럴 수 없으니 전자책과 사설 몇 편을 읽고 그대로 점심을 즐기러 나섰다. 오늘 식당은 점심만 제공한다. 점심이라도 주시는 게 어디야.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같은 날은 칼퇴가 답이다. 저녁은 제공하지 않으니 든든하게 먹고 퇴근해서 귀염둥이들이랑 같이 놀아야겠어. 도무지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 점심을 먹으면서 이렇게 결심했다. 등 푸른 생선도 먹고 칼칼한 청양고추도 먹었겠다 귀염둥이들과 놀 수 있는 에너지는 넉넉히 충전했다. 오늘 퇴근길은 피곤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차가 막히지 않는 도로가 퇴근길을 즐기며 귀염둥이들을 만나러 간다.
< 오늘의 Pick! >
- 등 푸른 고등어+청양고추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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