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5일 - 아빠와 아들
아빠와 함께하는 캠핑이란 주제로 유치원 행사에 참여하는 날이다. 둘째 귀염둥이가 꼭 같이 가고 싶어 했고 나도 귀염둥이랑 캠핑을 간다기에 주저 없이 연차를 썼다. 그렇다고 아침부터 가는 건 아니었다. 오전 정상수업을 마치고 하원하는 시간부터 캠핑을 가는 것으로 일정이 계획됐다. 특별히 준비할 건 없었고 상의는 꼭 하얀색을 입고 오라고 했다. 전날 하얀 티에 편안한 바지하나를 준비해 뒀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둘째는 등원을 시켜주고 학교에 가지 않는 첫째와 막내랑 놀기 시작했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첫째와 체스를 했다. 체스를 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습득이 빨랐다. 아이들은 모두 천재라고 말하는 게 이런 상황을 빗대어 말하는 건가. 사실 아이가 천재성을 띄고 있는 것도 좋지만 감정을 잘 다스리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확신한다. 어떤 게임이나 경쟁이 필요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승패를 떠나 서로를 칭찬하고 격려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다. 체스는 아직 나와 상대가 되지 않지만 정말 멋진 건 본인의 패배가 뚜렷해졌지만 화를 내거나 삐치지 않는 모습이었다. 악수하며 "잘했어요~"라고 격려한다. 화라는 감정을 인정하고 부드럽게 표현하는 방법을 수년간 연습한 노력이 이제야 빛을 발하는가 보다. 첫째는 8살이 되고 나서 말썽꾸러기인 동시에 의젓한 형이 되어 있었다. 갑자기 너무 빨리 커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둘째가 없어서 그런가 막내와도 곧잘 노는 모습이 귀엽다. 첫째와 노는 시간을 보낸 후 막내와 노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 막내는 웬만큼 배부르지 않거나 무언가 충족되지 않으면 조금만 놀다가도 안아달라고 양팔을 쭉 뻗는다. 내가 없으면 그렇지 않다는데 말이다. 아내는 내가 너무 자주 안아주고 빨리 도와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오케이 인정한다. 그래도 많이 좋아진 편이다. 안 찾으면 아쉽고 찾으면 귀찮고. 매주 주말 아침에 반복되는 일이지만 첫째가 "아빠 8시 30분이에요 일어나요!" 하고 깨운다. 같이 놀자는 뜻이다. 그 소리에 둘째도 일어난다. 이미 깨어있었다는 듯 말이다. 막내도 형아들 소리에 깨서 뽈뽈뽈 다가온다. 주말의 시작은 이런 모습이다. 늦잠은 강 건너 일이다. 특히 야식을 먹은 다음날 아침은 굉장히 피곤한 상태로 하루를 시작한다. '으어... 왜 먹었을까...'. 이러다가도 귀염둥이들이 잠들면 곧장 생각이 달라진다. 숙취에 고통스러워 다신 술을 안 먹는다고 다짐하고 사나흘 뒤에 술은 먹는 것과 같은 샘이다.
막내와 노는 건 아주 간단하지만 의외로 엄청난 재미가 있다. 작은 손으로 장난감을 제자리에 담기도 하고 "000이 어디에 있지?" 하면 "응?"으로 귀엽게 화답한다. 안아주고 비행기 태우고 책 보고 장난감 만지고 블록을 쌓고 무너뜨리고 등등 모든 게 놀이가 된다. 어릴수록 적은 사물로 다양하게 놀 수 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그렇게 놀기가 쉽지 않다. 놀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점심은 밥에 반찬을 먹었다. 금세 한 그릇을 뚝한 먹은 첫째는 1시간의 꿀맛 같은 게임시간을 즐기게 했다. 그 사이 설거지를 하고 막내를 재울 준비를 했다. 그렇게 하면 나의 쉬는 시간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쉬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막내를 안고 살랑살랑 흔들어 준다. 겨우겨우 재워두고 커피 한잔으로 쉬는 시간을 시작했다. 커피를 먹어도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은 편안함이 왔다. 첫째는 게임을 막내는 낮잠을. 집안이 조용해졌다. 게임을 마친 첫째는 나와 아내까지 셋이 히포라는 보드게임을 했다. 첫째가 두 판을 먼저 이겼다. 잘했어요~!.
둘째와 캠핑에 갈 시간이 거의 됐다. 첫째를 태권도 학원에 보내주고 유치원으로 향했다. 하얀색 티를 입은 사람들이 듬성듬성 보였다. 아빠들이다. 그 틈으로 들어가 나도 아빠부대에 편승했다. 아빠들은 서로 견제 아닌 견제하듯 무심히 서서 아이들이 나오길 기다린다. 저기 멀리서 꼬물꼬물 귀염둥이들이 걸어온다. 아빠들의 태도가 일순간 달라졌다. 변검인가.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하게 웃으며 아이들의 손을 잡았다. 아빠의 모습이다. 나도 우리 귀염둥이 손을 잡았다. "귀염둥이! 아빠랑 캠핑 가네~ 너무 좋다!". 담임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45인승 버스 두 대에 나눠서 아이들과 아빠들이 탑승했다. "아버님들 오늘 이렇게 귀중한 시간 내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라는 인사말로 캠핑의 시작을 알렸다. 20명 정도의 아이들과 함께 탄 버스는 정말 재잘재잘 시끌시끌 이었다. 귀염둥이는 안전벨트를 매고 여기저기를 구경했다. 선생님은 한 시간 정도 이동하면 도착한다고 안내해 주셨다. 버스 안에서 동요가 흘러나왔고 둘째는 동요를 따라 흥얼거렸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이런 모습을 볼까. 창밖을 보는 척 둘째가 흥얼거리는 소리에 정말 집중했다. 코로나시대에 맞물려 어디 한번 제대로 돌아다니지 못했던 둘째의 지난날이 떠올랐다. 미안하고 속상한 마음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모습을 보면 내가 지나치게 감상적인 인간인 걸까?.
꾸벅꾸벅 졸다가 잠든 둘째가 고꾸라지지 않게 잡아줬다. 한 시간이 조금 안 돼서 캠핑장에 도착했다. 도착지는 생각했던 캠핑장의 모습이 아니었다. 더 근사한 곳이라고 설명해야겠다. 유치원 설립자분인 이사장님의 별장이었다. 코로나가 일상이 되기 이전엔 매년 졸업을 앞둔 아이들을 축하하기 위해 삼겹살파티를 했다고 하셨다. 한적하고 적당한 고도가 안겨주는 시야도 아주 좋았다. 바로 이곳이 아이들과 즐거운 오후를 보낼 장소였다. 별장으로 가는 길엔 오디열매가 우수수 떨어져 있었다. 돌과 나무가 늘어선 길을 따라 별장안으로 쭉 들어가니 넓은 뜰이 보였다. 아빠들과 아이들이 모두 모이니 넓은 뜰이 가득 찼다. 일정은 심플했다.
- 식사, 사진촬영 - 1시간
- 게임 - 1시간 20분
- 보물찾기 - 30분
- 아빠랑 대화 - 20분
- 선물공개
이사장님의 개회사로 즐거운 행사가 시작됐다. 식사는 삼겹살을 구워 먹는 걸 계획했으나 사고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뷔페로 제공한다고 하셨다. 아무렴 좋다. 사람이 많기 때문에 1,2조로 나눠서 식사를 하는 것으로 했다. 식사를 먼저 할지 나중에 할지는 행사 진행자분이 세상 공평한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해보자고 했다. 우리는 식사를 먼저 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식사시간이 긴 귀염둥이에겐 좋은 조건이었다. 날씨가 좋아서 나중에 사진을 찍어도 문제는 없었다. 밥 묵자. 귀염둥이가 접시를 들고 있으면 음식을 하나씩 담아줬다. 둘째의 모든 모습이 귀여웠다. 신나게 밥 먹고 귀염둥이랑 둘이 기념촬영을 했다. 얼마나 행복한가. 사진까지 다 찍고 나서 보리수도 땄다. 생긴 건 대추토마토와 유사했다. 식감은 물렁하고 맛은 시고 달고 약간의 떫은맛도 있었다. 뒷맛이 약간 쓰기도 했고 오미자느낌이랄까. 작은 손으로 야무지게 보리수를 따는 둘째는 아주 즐거워 보였다. 새콤하니 둘째가 좋아하는 맛이었다.
예쁘게 사진도 찍고 밥도 먹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게임에 참여할 시간이다. 시작하기 앞서 몸을 풀어주고 서먹서먹한 아빠들의 분위기를 조금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놀이로 시작했다. 2명, 4명, 8명 숫자를 늘려가며 둥근 원을 만들어갔다. 그리고 팀 대결이 시작됐다. 아이와 아빠가 역할을 나눠서 하는 게임으로 대부분 진행됐다. 아이가 주사위를 던지면 아빠는 달리고 아빠가 탑을 쌓으면 아이가 시원하게 무너뜨리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특히 밴드통과하기 게임은 아주 속도감 있고 모두를 웃게 만드는 게임이었다. 게임방법은 바닥에 있는 밴드 하나를 들고서 둘이 함께 통과하고 처음 자리로 돌아오는 게임이었다. 내가 먼저 머리부터 통과하고 귀염둥이를 통화시킨 후 제자리로 쏙 돌아왔다. 우열을 가릴 수 없어서 3번은 반복했다. 아빠들끼리 팀을 만들어서 밴드를 통화 가는 것도 했다. 다 큰 남자 둘이서 한다는 게 부담스럽고 어색했지만 이것도 잠시였다. 시작소리와 함께 한 명씩 쏙쏙 밴드를 통과했다. 쭉쭉 잘 늘어나는 밴드 덕분에 걱정했던 스킨십은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에 봤던 아빠들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고 보니 버스를 탈 때부터 게임하는 지금까지 우리 귀염둥이만 쫓아다니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우리 귀염둥이를 엄청 좋아한다고 한다. 너무 귀여웠고 사랑스러워서 둘이 손잡고 서있는 모습 바닥에 앉아있는 모습을 하나씩 남겨놨다. 마지막 게임은 신발을 던져서 바닥에 펼쳐진 과녁 안으로 올려놓는 게임이었다. 정말 안타깝게도 나는 과녁 점수판에 가지도 못했다. 과녁에 올려놓은 아빠들도 있었다. 아빠가 날려서 과녁에 올려놓은 신발을 다시 가져오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놀이의 묘미란 이런 것이다. 이렇게 1시간 20분의 게임시간이 끝나고 모두가 기대하는 보물찾기 시간이 왔다.
이사장님은 보물이 어디쯤에 있는지 힌트를 주셨다. 아이들은 힌트와 상관없이 가고 싶은 곳으로 다다다 뛰어갔다. 우리 귀염둥이도 그랬다. 보물이 적혀있는 종이를 찾아야 하는데 꽝 종이만 두 장 찾았다. 귀염둥이는 그 종이를 보고 좋아했다. 보물이 필요하기보다 보물찾기 활동을 좋아했다. 한참을 찾아도 보이지 않자 귀염둥이랑 술래잡기를 하듯 뛰어놀았다. 그리고 이미 상품이 적혀있는 종이들은 다 찾았다고 한다. 하지만 전혀 아쉽지 않았다. 마지막에 접어들자 약간 분위기가 달라졌다. 귀염둥이들과 대화를 하는 시간이었다. 가짜 촛불을 하나씩 나눠주셨고 귀염둥이는 촛불을 가지고 놀았다. 대화시간이라기보다 앉아서 얌전히 노는 시간으로 생각했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보물찾기 1,2등을 한 아이에게 큰 선물을 줬다. 멀리서 봤지만 캠핑용 의자와 식탁을 전달한 것 같았다. 이렇게 캠핑은 끝나고 다시 버스로 올랐다. 어두워진 하늘 아래에서 동요를 들으며 유치원으로 향했다. 자장가 같은 동요에 나도 꾸벅 졸았다. 힘겨운 일정을 마친 둘째는 집에 와서 깨끗이 씻고 10분도 안 돼서 잠이 들었다. 행복한 하루가 넘어갈 즈음 우리 부부의 배도 조금씩 고파왔다.
오늘도 야식을 먹기로 했다. 오늘은?.
▶ 오늘의 야식비 : 30,870원 / 어른 2
- 곱도리탕 1
- 누룽지탕 1
- 소주 3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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