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16일 - 회상
이젠 반팔을 입고 출근해도 이상하지 않은 날씨다. 오히려 반팔을 입어야 출근할 맛이 날 정도다. 얇은 옷을 여러 겹 입은 분도 보이고 반팔반바지도 보이고 아주 가끔 가벼운 패딩을 입은 분도 봤다. 1시간 후면 저 패딩은 어딘가에 걸쳐져 있으리란 생각을 해본다. 다시 일이 많아지면서 바빠지고 정신 차려서 일하자는 독려가 늘고 있다.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속으로 외쳐본다. 정규 근무시간은 8시부터 17시. 하지만 그걸 지켜본 적은 손에 꼽는다. 나의 역사를 되짚어볼 때 정시 출근은 있어도 정시퇴근은 거의 없었다. 그러다 첫 번째 직장이었던 회사가 생각났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내가 거쳐간 회사들 중 가장 크다. 지금에 비하면 첫 직장은 정말 초라하기 짝이 없는 회사였다. 사회초년생일 때 이런 질문이 가장 두려웠다. "무슨 회사에 취직한 거야?". 대답하기 싫고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였다. 분명 내가 선택해서 갔지만 결과적으론 신중치 못한 나의 태도가 불러온 결과였다. 사실 엄마, 아빠에게 가장 미안했다. 새벽부터 밤까지 장사를 하는 와중에 날 챙겨주신 그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그 회사에도 직원들이 여럿이었다. 내가 그 회사가 이상하다는 점을 인지한 건 약 2주 정도 지났을 때다.
넉살 좋은 사장님이 어느 날 무섭고 인정 없는 사장으로 변해있었다. 영업실적이 좋지 않은 부하직원은 벌을 주는 듯했다. 사회란 실전이고 지독한 곳이구나 그것도 영업직은 이런 것이로군 하고 잔뜩 긴장을 했다. 당시 나는 나보다 3개월 정도 먼저 들어온 신입사원과 한 팀으로 영업을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어딘가 어리숙하고 항상 부럽다는 말과 못하겠어라는 말을 반복하던 그 사원과 함께 이곳저곳을 다니기 시작했다. 결국 그 사원은 1달 뒤에 퇴사를 했고 나 홀로 영업을 다녀야만 했다. 얼굴을 익히기 위해서 3개월 빠른 사원이 남겨준 명함집에 있는 전화번호를 하나씩 누르기 시작했다. 사원부터 사장님까지 영업활동에 필요한 사람들은 가리지 않고 만났다. 알다시피 대부분 이런 전화는 잡상인으로 취급해서 그냥 끊거나 기약 없는 약속만 남긴다. 그렇게 전화를 하다 인상 좋으신 여자 사장님을 만나 뵀다. "뭐야 이번에 또 새로운 사람이네?". 마치 익숙하다는 듯 말씀하셨다. 여러 차례 여자 사장님과 대면하다 보니 당시 내 회사 사장의 평판이 그리 좋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바뀐 직원들만 해도 거의 10명은 된다고 했다. 안 그래도 10년 차 과장과 한 판 싸우는 모습도 봤다. 이런 회사를 다니기 위해서 그동안 비싼 돈 주고 공부하고 시간을 썼던 것인가.
더 바보 같다고 느낀 건 그 사장에게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한 내 모습이었다. 왜냐면 나는 아무런 포부도 없었고 그저 시키는 일만 잘하고 주는 월급 받으며 살면 되지라는 단순무식한 생각으로 무장했기 때문이다. 지능이 낮은 로봇 같았다. 나 스스로 그 사장 손아귀로 들어온 느낌이었다. 조금만 생각했어도 그 일 자체가 성장성이 전혀 없다는 사실은 진작에 알았을 텐데. 무책임하고 둔하기까지 했다. 결국 먼저 나간 3개월빠른 사원처럼 같은 선택을 하게 됐다. 좌절감이 밀려오며 나는 인생의 첫 번째 사표를 내밀었다. 그 상황을 보자 사장은 영업팀장을 곧장 불러들여 나무라기 시작했다. 끝까지 미운행동으로 내 머리에 남은 그 사장. 체력은 좋으나 사업을 키울 수 있는 인품은 아니었다.
헤드헌터의 추천으로 들어간 첫 직장. 바보 같은 건 한 가지 더 있었다. 회사가 서울에 있다는 점을 위안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회초년생이기도 했으나 퇴사를 하며 가장 큰 좌절감을 만든 건 내 모습이었다. 인조인간을 다루는 만화나 영화를 보면 인조인간 하나가 희생된다고 슬퍼하거나 하던 일이 멈추거나 하지 않는다. 다른 인조인간이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내 꼴이 딱 그 모습이었다. 심지어 난 부모님의 사랑과 정성을 받으며 자랐는데 막상 사회에 나와보니 내 스스로를 인조인간 취급했던 것이다.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너 정도의 능력을 지닌 부품은 얼마든지 있어.
이후 이야기는 다음에 써야겠다. 출근길에 문득 떠오른 그 시절. 지금의 나는 제법 많이 행복해져 있다.
매일 이런 식사를 할 수 있는 것만 해도 행복지수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무엇보다 그때를 기억하기 때문에 누군가 차려준 밥상 앞에서는 절대 불평하지 않는다. 내가 차린 밥상도 마찬가지다. 연초부터 우리 팀은 꾸준히 바쁘게 달려왔다. 다행인 건 누구 하나 낙오자가 생기지 않고 힘들어도 서로를 격려했다는 점. 때로는 볼멘소리가 나올 때도 있지만 그것도 일의 한 부분으로 생각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보다 아내가 더 정신적인 피로도는 더 높다고 생각한다. 퇴근하면 화가 나 있는 아내의 모습에 무작정 아이들의 편을 들곤 했다. 그런데 막상 쉬는 날 아이들에게 밥도주고 청소도 하고 제대로 돌보니 아내의 행동이 조금씩 이해가 갔다. 지금은 아내가 내는 큰 소리에 곧바로 반응하지 않는다. 한 발짝 물러서서 왜 그럴까 무슨 일일까를 먼저 생각한다.
기다림의 안전장치를 걸어놓기만 해도 아내와 다투는 일이 준다. 아이들에게 좋은 방향으로 훈육할 수 있는 기회는 늘어난다. 첫째가 말했던 가장 첫 번째 스승이 나와 아내니까. 누구보다 아내를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려 노력하고 있다. 오늘도 맛있는 식사를 먹고 건강해서 행복하다.
< 오늘의 Pick! >
- 꽈리고추 멸치볶음 + 내게 아주 필요한 미역줄기 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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