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_갑진년/세상에는요

[퇴근길] 인화된 아내의 증명사진

솔트리오 2024. 11. 26.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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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아내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정말 같이 조금만 노력해 보자. 왜냐면 짧은 기간이지만 첫째가 달라졌어! ^0^


그 순간 아내의 얼굴이 너무도 환해 보였다. 육아에 지친 아내 얼굴에 이런 모습이 있었던가.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웃기거나 흡족해서 웃는 얼굴과는 사뭇 달랐다. 뭔가 희망을 본듯한 표정이랄까. 아내의 즐거운 표정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출근 전날 오랜만에 가방 정리를 하는데 주머니 한 구석에 카드같은게 겹겹이 있었다. 뭔가 해서 꺼내봤더니 증명사진이었다. 본인이 찍고 숨겨둔 사진인지 몰라 궁금함에 꺼냈다. 아내의 사진이다. 여러 장의 아내 사진이었다. 파란 배경과 핑크색 배경의 사진. 언제 적 사진일까. 밝게 미소짓고 있었다. 지금의 아내도 예쁘고 멋지지만 몇 년 전의 아내 사진도 매력적이었다. 사진 한 장을 꺼내들고 여러 생각에 빠졌다. 아내가 결혼을 안 했더라면 자기만의 커리어를 쌓으며 네?아이가 주는 스트레스에 힘겨워하진 않았을 모습을 상상했다. 매일 보는 얼굴이라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인화된 아내의 단독 사진은 연애 이후로 정말 오랜만이었다. 연애할 때는 앨범을 만들어 소중한 추억에 정성까지 더했다. 보고 있으면 추억에 마음이 따듯해지고 찡해지기도 했다. 만약 인화된 사진이 아닌 스마트폰에서 봤다면 이 정도의 감성은 없었을 거다. 인화된 사진을 집어든 순간 자동으로 한 편의 여정이 그려졌다.


화창한 어느 날. 아내는 예쁘게 꾸미고 설레는 마음으로 사진관에 간다. 촬영전 거울을 보고 옷매무새를 매만지고 머리와 화장은 어떤지 꼼꼼히 살펴본다. 약간 어두운 공간 한가운데 놓인 둥근의자에 앉아 카메라를 바라본다. 사진기사님의 말에 고개를 살짝 움직이고 환하게 미소를 짓는다. 짧지만 소중한 한 컷을 기다리며 아내는 사진이 나오는 동안 거리를 구경한다. 시간이 흐르고 두 손으로 사진을 받아 사진관을 나선다.



가만히 앉아 그때의 아내 모습 생각에 빠졌다.



스마트폰 카메라 성능이 좋아지면서 전문 장비가 없어도 누구나 멋진 사진을 찍는 게 일상화된 요즘. 스마트폰에서 느꼈던 선명함과 극적인 드라마보다 더 진한 드라마 한 편을 경험했다. 가방 속에 놓여있던 사진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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