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_계묘년/건강

사랑을 나누는 방법 헌혈! 10회차

솔트리오 2023. 1. 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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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일찍 퇴근 후에 가까운 헌혈의 집을 찾아갔다. 소매를 걷어두기 좋도록 옷도 골라 입었다. 셔츠를 입고 가는 것도 좋지만 추운 겨울엔 여려 겹의 옷을 겹쳐 입다 보면 팔을 시원하게 걷기가 어렵다. 생각보다 압박이 커서 헌혈하는 동안 불편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팔을 걷기에 좋도록 옷차림을 다시 만졌다.



6시 헌혈로 예약했지만 조금 일찍 가도 여유 있게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헌혈의 집으로 갔다. 곧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된다. 세상에 헌혈의 집에 사람들이 가득 찬 것이다. 이 정도 일 줄이야. 앉아서 기다릴 만한 자리도 한 두 자리뿐일 정도였다. 그리고 생각보다 커플들이 많았다. 같이 헌혈하고 기다렸다가 맛있는 음식 먹으러 가는 것도 의미 있는 데이트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연애할 때 헌혈은 생각도 안 했는데 여러 쌍의 연인들을 보면서 생각보다 세상이 살만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겉모습으론 헌혈과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 한껏 멋 낸 친구들도 많았다. 편견을 갖고 봐서 미안합니다. 무엇보다 그곳에서 안내해주는 분도 당황하셨다. 간호사분들도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이셨다. 나는 예약을 하고 왔기에 대기 시간이 길지 않을 거란 생각을 했다.

 


안내원님 : 안녕하세요. 예약하셨어요?
본인 : 안녕하세요. 네 6시에 예약했어요. OOO이요.
안내원님 : OOO님... 어... 없는데요 혹시 오늘이 맞는지 확인해 보시겠어요?
본인 : 네? 6시로 예약했는데... 네 확인해 볼게요

 

명단을 보니 내 이름이 정말로 없었다. 대기하는 사람이 적었다면 크게 당황하지도 안 했을 테지만 생각보다 많은 대기인원을 보고 헛걸음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받은 메일에서 예약한 날짜를 확인해 봤다. 11시 30분? 응?. 당황스러웠다. 왜 6시로 착각을 했던 건지 곰곰 생각했다. 점심시간을 활용할지 퇴근 후에 할지 고민했다가 점심시간을 활용하자는 생각에 11시 30분을 택했던 게 뒤늦게 생각났다. 허탈함에 돌아갈까도 생각했지만 이왕 여기까지 온 거 기다려서 목표를 달성해보자 하는 마음이 커졌다. 다른 특별한 약속도 없기도 했다.



본인 : 대기표 주세요. 시간을 잘 못 알고 있었어요.
안내원님 : 네 조금 많이 기다리셔야 될 것 같아요. 적어도 한 시간 정도요.
본인 : 네 기다릴게요. (한 시간... 메모장 한번 끄적여 볼까.)



아무리 생각해도 놀라웠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헌혈을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의자에 앉아서 대기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대기시간이 너무 길어서 잠깐 밖에서 시간을 보낸 사람들도 있고 당일 헌혈이 안 되는 몸상태였는지 일찍 나가는 분도 봤다. 나중엔 일반헌혈 접수 마감을 알렸다. 성큼성큼 들어온 한 남자분은 오늘은 헌혈을 할 수 없다는 현실에 살짝 어이가 없고 불쾌하다는 표정까지 지었다. 무엇이 분노의 감정을 건드렸던 것일까. 힘들게 왔는데 못한다는 사실일까 아니면 다른 뜻일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일반(예약을 하지 않은 경우) 헌혈과 예약헌혈이 모두 많다 보니 안내원분은 예약한 분들에게 예약시간보다 조금 밀릴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시며 일일이 양해를 구하는 모습이었다. 일반헌혈과 예약헌혈을 번갈아 가며 진행했다. 예약한 사람들 입장에서 예약이 무슨 의미인가 싶겠지만 레드커넥트 어플을 사용하지 않는 분들이 아직 많아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다.



대략 1시간 30분을 기다렸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문진실로 들어갔다. 의사분이 안 계시고 지난번 9회 차에 헌혈해주신 간호사님이 그 자리에 계셨다. 의사님은 안 계시냐는 궁금증은 딱히 생기지 않았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으신가 보다 생각했고 혈액검사를 위한 약지 채혈과 해외여행 여부 등등 여러 가지 질문에 이상여부를 확인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전혀 불편함 없이 정상적으로 절차를 진행했다. 놀이공원 자유이용권처럼 손목에 띠를 채워주시는데 헌혈가능 확인증이면서 혈액형과 신원확인을 할 때 쓰인다. 문진을 마치고 혈액엔 수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수분섭취가 중요하다며 자주색으로 된 팩음료수를 주셨다. 마침 목말라서 물생각도 났고 자주색이라 과일 음료라 생각하고 살펴봤다. 물이다. 해양심층수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되지 않는 물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뚜껑을 따서 먹는데 새로운 물맛이었다. 약간 철분이 포함됐는지 물에서 철맛도 나고 부드러운 듯하면서 비릿함이 살짝 있는 것 같은 아주아주 싱거운 이온음료 맛이다. 맛도 그렇지만 목 넘김이 생수와는 확실히 달랐다. 간호사님 말씀 따라 바로 물먹고 10분 정도 더 대기했다.


간호사님 : OOO님~. OOO님 맞으세요?. 혈관 확인하겠습니다. 양팔 소매 모두 팔꿈치까지 걷어서 보여주세요...(눈으로 확인 후) 오늘은 헌혈하시는 분들이 많으셔서 왼팔만 헌혈 가능한 자리가 남았는데 괜찮으세요?.
본인 : 네 괜찮아요.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을 땐 간결한 대답이 좋다. 드디어 오랜 시간을 기다린 끝에 헌혈자리에 누웠고 간호사분은 곧바로 헌혈준비를 해주셨다. 알코올과 빨간약을 발라 소독해 주시며 혈액형과 신원을 확인하신다. 헌혈마다 느끼지만 이 순간이 가장 긴장된다. 바늘을 꺼내고 손 끝으로 내 혈관을 다시 토닥이듯 톡톡 두드렸다.


간호사님 : 숨 크게 들이마시고~따끔. 잘 참으셨어요. 잘 진행되고 있고요 불편하거나 속이 좋지 않으면 말씀해 주세요. 삐삐 소리가 나면 주먹운동해 주세요. 피가 잘 안 나오는 경우에 나는 소리니까 천천히 반복해 주세요.(스펀지를 하나 쥐어주신다)

헌혈기계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오며 본격적인 헌혈이 시작됐다. 바늘이 들어가는 순간까지 계속 지켜봤는데 오른팔에 주사를 놓는 위치보다 조금은 안쪽으로 놔주셨다. 머릿속으론 '바늘을 꽂는 위치가 오른팔이랑 다르네?' 생각하면서도 물어보지 않았다. 피가 잘 나오고 있다니까 왼팔은 이쪽에 주시를 놓는가 보다 했다. 그래도 11회 차엔 물어봐야겠다. 왼팔이랑 오른팔이랑 주사를 놓는 위치가 다른지 말이다. 오른팔보다 조금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바늘이 덜 꽂힌 것 같기도 하고.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약간 걱정했나 보다... 밴드도 이불 덮어주듯 살짝 붙여주셨다. 간호사분마다 성향인 건가... 여하튼 다음 11회 차에 물어봅시다.

처음 왼팔 헌혈이다.피가 더 잘 나오는거 같은데?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 벽걸이 TV화면엔 대기 번호 화면만 떠있었다. 이제부터 멍하니 쉬는 시간이었다. 눈만 감으면 잠을 잘 것 같은 약간의 피곤함도 있었다. 분주하게 일하는 간호사분들이 멋있었다. 제대로 식사도 못하고 화장실도 못 갔다 왔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단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말이 생각났다. 한적한 때만 이용하다 보니 처음 겪는 기분이었다. 정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고 그저 눈앞에 보이는 상황만 쳐다만 봤다. 다른 때 보다 열심히 주먹운동을 했고 헌혈은 끝이 났다.

 

 

간호사님 : 헌혈 끝나셨고요. 바늘 뺄 때 따끔합니다. 숨 크게 들이마시고... 따끔. 수고하셨습니다.

본인 : 네 수고하셨습니다.

 

 

지혈할 수 있는 휴식시간을 더 갖고 간식과 상품을 받았다. 나름대로 헌혈을 대비해서 옷을 챙겨 입었지만 그래도 겨울이다 보니 팔을 구부릴 때 압박감이 조금 더 느껴진다. 특히 나는 가방을 메고 다니기 때문에 가방매는 동작에 팔을 구부리는 과정이 있어서 그 순간은 찌릿하다고 해야 하나 약간 신경 쓰이는 느낌이 든다. 헌혈 후 지혈을 위해 붙여주신 밴드는 4시간 후에 떼라는 안내원분의 안내에 따라 시간에 맞춰 떼어냈다. 생각보다 부어있었지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단지 왼팔로 귀염둥이들을 안아주지 못할 뿐이었다.

 



이로써 올해 헌혈 10회 차 목표는 달성했다. 혈장성분을 헌혈하면 1년간 최대 12회 헌혈이 가능하지만 헌혈시간이 길게 필요하기 때문에 점심시간을 활용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2개월에 한 번 주기로 가능한 전혈을 택했고 헌혈시간도 비교적 짧기 때문에 점심시간을 활용하기에 좋다. 단 무거운 것을 들거나 출장이 없는 일정으로 골라서 한다.


헌혈을 위해 부녀지간이 함께 온 것을 봤다. 나보다 먼저 헌혈을 마치셨는데 오늘 헌혈을 하려고 어제 소고기까지 먹었다며 좋아하셨다. 연말이 참 따듯했다. 헌혈에 대한 걱정과 일부 좋지 않은 인식들이 있지만 지정헌혈을 경험한 후에는 누군가를 위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기적 헌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내가 언제 이렇게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겠는가. 세상이 흉흉해졌다지만 그래도 따듯한 곳은 있다. 헌혈 덕분에 건강관리를 꾸준히 해야겠다는 마음도 생기고 혈액검사 결과에 따라서 식이조절에 대한 동기부여도 해준다. 헌혈 횟수보다는 조금이라도 젊을 때 건강한 피를 나눠 수혈받는 분들의 건강이 하루빨리 나아지기를 바란다.

 

 

어플을 보니 100회, 200회, 300회 달성 배지가 있었다. 이렇게까지 하는 분들도 있나 싶었지만 숫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궁금함에 전혈(2개월 주기)로 100회를 달성하려면 어느 정도 으 기간이 필요한지 계산해 봤다. 100회 차 까지 남은 건 90회다.

 

1년 = 6회 → 15년 90회 → 100회 달성

 

기나긴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 귀염둥이들이 성인이 된 후에 100회 달성이 가능했다. 그날은 내게 무슨 기념을 해줘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 성격상 특별한 걸 할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횟수가 중요한가 마음이 중요한 거지... 2022년 연말의 헌혈파티는 무사히 마무리됐다. 헌혈에 적극적인 많은 분들도 봤고 언제나 열심히 일하시는 간호사분들도 봤다. 세상을 밝고 긍정적으로 살아갈 이유는 멀지 않은 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비교하는 삶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돕고 사는 삶을 살도록 작은 실천부터 하나씩 하자.

 

 

엘리베이터에서 열림버튼 누르고 기다리기 이런 것도 돕고 사는 삶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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