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시간은 40분. 이 시간 안에 나는 이곳을 탈출해야 한다. 그 시간을 넘기면 첫째가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진다. 마음을 단단히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적절한 타이밍에 나와야만 한다. 드디어 시작됐다.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퇴근시간이 지나도록 모니터 앞에 앉아 작성 수정을 반복했다. 업무시간이 지난 만큼 에너지가 부족해지지 않도록 저녁밥도 잘 챙겨 먹었다. 요새는 저녁에도 통화업무가 빈번해졌다. 메모하고 고민하고 자료를 만들고 설명하기를 반복한다. 작성된 자료가 쌓이는 만큼 묵직한 피로와 쉼에 대한 갈망은 커져만 갔다. 게다가 한 동안은 첫째의 태권도 시합준비를 위해 9시까지 데리러 가야 한다. 시합이나 승품/단 시험이 있으면 9시까지 데리러 갔다. 그때처럼 야근시간이 장해진 셈이다. 지금은 일곱 시가 조금 안 됐다. 나와 팀원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들 조금 전에 퇴근했다. 뒤따라 퇴근준비를 했다. 전화가 온다.
"나머지는 내일 하자~ 눈 아프고 머리가 띵하네"
팀원과 대화를 하며 퇴근준비를 마치던 때 부장님께 전화가 왔다. 퇴근하셨는데 무슨 일이시지?! 전화를 받았다.
"간단하게 치맥 먹을래?!"
치맥을 듣는 순간 참석 여부를 판단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금은 7시가 조금 안 된 시간이다. 나의 속사정은 가서 말씀드리기로 마음먹고 대답했다.
"네! 어디로 가면 될까요!"
장소는 카톡으로 전달받았다. 회사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동네 치킨집이었다. 머릿속에서 치킨집의 풍경을 그리기도 전에 빠른 계산이 시작됐다. 집까지 가는데 1시간 정도 필요하고 태권도장까지 10분 정도 걸린다. 태권도장에 도착해야 할 시간은 저녁 9시. 치맥과 헤어질 시간은 7시 50분 정도. 10분 후부터 치킨집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약 40분. 상당히 제한적이다. 빠르게 그곳으로 향했다.
저녁도 든든히 먹었다. 하지만 저녁을 먹었다고 치맥을 먹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디저트배? 가 따로 있는 것처럼 치맥배도 따로 있었다. 드디어 보이기 시작했다. 멀리서 보이는 간판. 가게 앞에 펼쳐진 의자와 원형 테이블. 두런두런 사람들의 대화소리. 분위기 좋은 야외 카페와 무엇이 다른가. 자리에 앉았다. 주문은 완료된 상태였다. 치맥이 나오기에 앞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말씀드렸다. 부장님은 잠깐이라도 온 게 어디냐며 많이 먹고 가라고 하셨다. 부담은 내려놓고 행복은 올리고 다음을 위한 파이팅이었다. 경건한 마음으로 무심히 담긴 뻥튀기를 하나씩 집어 먹었다. 사 먹을 땐 이 맛이 안 나는데 가게에 방문해서 먹으면 희한하게 맛있다. 15분 정도 지났을 즈음 서빙하는 분이 양손에 넓은 접시를 들고 우리 쪽으로 오셨다. 드디어 왔다. 곧이어 생맥주도 왔다. 반가움의 건배로 시작된 치맥타임. 맥주가 너무 빨리 사라지지 않도록 적절히 마시려 했지만 이런 날 맥주는 꿀맛이다. 그래도 너무 빨리 사라지면 속상하니까 양조절을 했다. 양념과 후라이드, 모레집 그리고 떡이 같이 있었다. 닭고기는 가리는 부위 없이 다 좋아한다. 가슴살이라고 뒷전으로 두지 않는다.
제한 시간 안에 대화, 맥주, 치킨 3요소를 챙기며 효율을 극대화했다. 직장인들에겐 흔한 기회일 수 있겠지만 내겐 그렇지 않았다. 이런 기회를 잡지 않으면 업무시간 외에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을 만들기가 너무 어려운 상황이다. 생존본능은 이럴 때 드러난다. 마치 쪽지 시험을 앞둔 상황이랄까. 시간을 제한할 때 뇌는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한다. 내게 갑작스러운 치맥타임이 그런 것이다. 번개의 장점이란 이런 것일까.
어느새 떠나야 할 시간이 됐고 뼈 바르는 시간이 아까워 모래집과 떡을 몇 개 집어 먹었다. 삶에 이런 작은 부분이 있어서 열심히 사는가 보다. 잘 먹었습니다. 이제 첫째와 만날 장소로 떠난다.
제한시간이 있기에 더 강렬하고 깊은 맛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아차... 사진을 안 찍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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