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일이 조금씩 해결되면서 아침 출근길이 조금 더 가뿐했다.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섰지만 전철엔 앉을자리 하나 없었다. 마음이 가벼워서 그랬는지 한적한 전철 안의 공기와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그날은 노약자 칸으로 탑승했다. 멀리 보이는 창밖 풍경을 보면서 저긴 누가 살까 어떻게 갈까 가면 무엇이 있을까. 질문만 뱉어낸다. 조용하고 여유로운 출근길을 즐기던 중이었다. 쿵!. 갑자기 뒤에서 큰 소리가 들리길래 누군가 문에 부딪혔나 하고 뒤를 돌아봤는데 한 남자분이 쓰러져 계셨다.
본인 : 아저씨 괜찮으세요?!.
아저씨 : 네?!.(영문을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날 봤다.) 누구세요?. 네. 네.
본인 : 머리 뒤에서 피나시는데요?. 진짜 괜찮으세요?
아저씨 : (나를 보는 것 같기 하고 초점이 없는듯해 보이기도 했다.) 네. 네
정말 놀랐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쓰러지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한 순간에 쓰러진 사람이 내 눈앞에 있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쓰러진 사람을 부축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됐다. 나보다 체격이 조금 작으셔서 쉽게 일으켜 세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쉽지 않았다. 옆에 한 남자분이 도와주셔서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정말 이상함을 느낀 건 방금 난 소리 정도 라면 상당히 고통스러우셨을 텐데 아파하거나 힘들어하는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열차 간 출입구 쪽엔 약간의 혈흔이 남았다. 노약자석에 앉아계셨던 어떤 여성분이 자리를 비켜주셨고 쓰러졌던 남자분을 자리에 앉게 했다. 그 순간부터 전철 밖의 풍경과 소리보다 그 남자분에게 시선이 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상했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그분의 보호자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고 그분 앞에 서서 이상한 징후가 있는지 계속해서 봤다. 쓰러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무심코 그분의 손을 봤다. 처음엔 손을 그냥 움직이시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손이 오그라지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시선이 하늘을 향했고 고개가 밑으로 스르륵 내려갔다. 바닥엔 소변으로 추측되는 액체가 흐르고 있었다. 그분의 어깨를 흔들었다. 긴급상황이다.
본인 : 아저씨! 괜찮으세요?
아저씨 :...
본인 : 아저씨 정신 차리세요!. 아저씨!.
어깨를 흔들다가 팔을 잡고 흔들어보려는데 팔의 느낌이 단단했다. 힘을 줘서 근육이 단단해지는 느낌과 사뭇 달랐다. 그리고 그 느낌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만졌던 팔의 느낌과 비슷했다. 온몸이 경직되고 있던 것이었다. 내 앞에서 사람이 죽어가고 있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소름이 돋았다. 나는 그 아저씨의 팔을 주물렀다. 순간 혈액이 돌아서 그런 건지 근육의 경직이 멈추는 듯했다. 그러다 다시 경직되기 시작했고 나는 계속 주물렀다. 근육의 경직을 막기 위해 팔다리를 계속해서 주물렀다. 결국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본인 : 도와주세요!. 여기로 눕혀주세요!.
그분을 바닥에 눕혔다. 사람들에게 도움의 신호는 보냈으나 그다음 어떻게 할지 머릿속이 하얬다. 그저 '아저씨! 정신 좀 차려보세요!'만 반복했다. 그때 어떤 아주머니 분께서 말씀하셨다.
여자분 : 이렇게 이렇게 가슴 누르는 거 있잖아요. 그거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본인 : 네?(일단 두 손바닥이 같은 방향을 보게 하고 오른손 잡이니까 오른손 손바닥이 보이도록 깍지를 꼈다. 그리고 가슴 부분을 서너 차례 눌렀다.)
남자분 : 하~...(심폐소생술을 멈추자 다시 손이 오그라든다.)
본인 : 에이씨... 정말...(너무 속상하고 이분이 숨 쉬도록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달리는 전철에서 나는 그분을 살려야겠다는 긴박함으로 내 인생 첫 실전 CPR을 했다. 솔직히 이때 속상하고 슬프고 화가 났다. 주변에서는 멀뚱멀뚱 보고만 있었다. 정말 사람이 눈앞에서 쓰러져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그저 남의 일이라는 식으로 보고만 있었다. 너무 원망스럽고 미웠다. 그래서 이분을 살리기 위해서 내 시간을 써야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물론 각자 중요한 일이 있어서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는 상황도 분명히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그 수많은 사람들 모두 중요한 일이 동시에 생길 가능성은 너무 희박하지 않은가. 지각하는 일이 죽어가는 사람을 보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나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길 바랬다. 머릿속에 미움만이 가득했다. 또 너무 슬펐다. 다음 역에서 문이 열리고 그분을 밖으로 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역시 안됐다. 다행히 문이 열리고 남자분 두 분이 붙어서 도와주셨다. 안전한 곳으로 그분을 들어서 눕혔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CPR을 했다. 이게 왜 힘들까라는 생각은 금세 사라졌다. 정말 힘들다. 분명 그날 아침은 쌀쌀했지만 CPR 몇 번에 땀이 뚝뚝 떨어질 정도였다. 내가 혼자서 CPR을 하는 게 너무 힘들어 보였는지 도와주시던 분들께서 돌아가며 CPR을 해주셨다. 정말 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이 상황을 모르고 다음 전철을 기다리시는 분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본인 : 도와주세요! 팔, 다리 좀 계속 주물러 주세요!. (계속해서 CPR을 했다.)
그렇게 다섯 명 정도가 들어붙었다. 한 분은 119에 신고를 나머지 넷은 돌아가며 CPR을 이어갔다. 119 상황실과 통화하는 분을 통해서 기도확보를 위한 자세로 고쳤다 쓰러진 분의 얼굴이 천장이 아닌 옆으로 돌려 침이 기도를 막지 않도록 했다. 정확히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렇게 다섯 명이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드디어 119 구급대원분들이 도착하셨다. 그리고 몇 차례의 CPR 후 제세동기로 다시 숨을 쉬게 만들었다. 제세동기를 다루는 모습은 생각보다 긴박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속으로 '뭐야 왜 저렇게 느긋한 거야'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초긴장상태가 마무리되고 119 구급대원께서 연락처를 남겨달라고 부탁하셨다. 몇 차례 거부했지만 나중에 이 분의 생사 정도를 알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 연락처를 전달했다.
그 일이 있은 후 약 두 달 정도가 흘렀다. 모르는 번호를 연락이 왔고 다행히 쓰러진 분께서는 건강하다고 연락받았다. 평소에 혈관건강 때문에 약을 드신다고 하시는데 그날은 약은 챙겨 드시지 못했다고 하셨다. 건강을 회복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세상이 너무 환하게 보였다. 예비군 훈련에서 받은 교육으로 다른 사람을 살리는데 힘을 쓸 수 있어서 감격스러웠다. 내 인생의 감격스러운 순간 상위에 올라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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