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그랬다. 아이들은 아빠와 만족스럽게 놀지 못해 아쉬워했다. 나는 피곤해서 집안일도 빨리, 아이들도 빨리 재우고 쉬고 싶었다. 조금씩 시간이 흐른다. 잠자기 전 책 한 권씩 읽고 잠잘 준비를 했다.
첫째 : 추워 아빠 이불 같이 덮을래.
본인 : 첫째 꺼 이불 있잖아 이거 덥으면 되지. 자면서 덥다고 이불 발로 차면서... 장난꾸러기 으그~!.
둘째 : 아빠 나 좀 보고 자요.
막내 : 애앵~(깽깽 운다)
자장가 동화를 틀고 소등한다. 부지런히 움직여서 그랬을까 평소와 비슷한 시간에 잠들었다. 그날은 첫째가 춥다고 다른 때 보다 이불을 더 꼭 덮었다. 알아서 이불을 꼭 덮는 첫째 모습은 예상외로 귀엽다. 그렇게 아이들은 잠들었다. 그리고 그날 오전에 하지 못한 아이들의 손톱을 깎아주었다. 방의 불을 다시 켜놓을 순 없어서 스마트폰 빛에 의존했다. 눈이 너무 피곤했지만 그래도 별 수 없었다. 해야 한다는 마음이 끈기를 만들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유치원, 어린이집에서 다치거나 다치게 할 수 있다. 어렵게 손톱 정리를 마치고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자 이제 자볼까. 얼마쯤 지났을까.
첫째 : 아빠~. 목말라요 물 좀 주세요.
본인 : 컵에 물 따라놨어 먹고 와.
첫째 : 무서워... 같이 가...
본인 : 밖에 밝아서 잘 보이는데... 먹고 오면 되지.(첫째 혼자 충분히 할 수 있는 건데 이제 막 잠든 나를 깨워서 마음이 살짝 불쾌해졌다.) 가자...
평소에 물을 잘 먹지 않는 첫째가 잠결에 물을 찾았다. 잠결에 움직여서 그런 걸까 자기 컵을 찾아들고 부엌 바닥에 앉았다. 그 모습에 갑자기 첫째의 꼬맹이 시절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 집에선 물을 항상 끓여먹기 때문에 새로 물을 끓이기 전에 남은 물은 큰 어른 컵에 따라놓는다. 물을 끓여 놓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주전자에는 뜨거운 물만 있었다. 나는 남아 있던 물을 따라둔 물컵을 건넸다. 꿀꺽꿀꺽 잘도 먹는다. 그 순간 불쾌했던 마음이 사라진다. 물먹고 화장실도 간다. 그 참에 나도 화장실에 다녀왔다. 첫째를 따라 움직였다. 걸어가는 모습이 귀엽고 많이 컸다는 생각과 함께 지낸 추억을 떠올리듯 뒷 보습을 물끄러미 봤다. 그리고 다시 이불을 덮고 잤다.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나는 첫째 둘째와 같이 잔다. 나를 중심으로 두 아이가 양쪽에서 뒹군다. 첫째는 온몸을 내게 움직이고 둘째는 내 베개를 차지하려 든다. 다른 곳으로 가서 넓게 잘 수 있지만 혹여나 아이들이 새벽에 일어나 날 찾아 우는 소릴 듣는 것보다 이렇게 잠드는 게 나았다. 시간이 지나 사춘기가 되면 녀석들도 각자 떨어져 잘 것이니까. 많은 생각으로 가득 채운 새벽을 보내다 다시 잠이 들었다. 얼마 후 첫째가 다시 날 깨웠다.
첫째 : 아빠 목말라요. 물 먹고 싶어요.
본인 : 먹고 와 첫째야...(두 번째 깨어난 잠에 괜히 더 피곤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다시 마음이 불편해진다. 다정하지 못한 걸까.) 근데 우리 첫째 또 목말라?.
첫째 : 네...(꿀꺽꿀꺽 물을 조금씩 먹는다.)
그리곤 다시 화장실로 가서 쉬를 한다. 나도 똑같이 화장실에 다녀왔다. 다시 누웠다. 이번엔 또 안 깨우겠지 하고 잠을 청했다. 이번엔 알람이 날 깨운다. 첫째가 두 번을 깨운 게 원인일까 너무 졸렸다. 알람을 끄고 잠깐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떠보니 6시였다. 순식간에 30분이 훌쩍 흘렀다. 출근 준비를 해야 할 때다. 요새는 막내가 새벽에 깨어나 나를 찾기도 한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출근하는 아침에 울음소리로 가득할 수 있으니 조심조심 움직인다. 스릴 넘치는 아침 출근 준비를 무사히 마치고 회사에 도착했다. 오전 회의를 마치고 업무를 시작했다. 9시 30분쯤이었다. 갑작스럽게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 시간에 오는 전화는 큰일이 난 것이다. 온몸에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고 전화를 받았다.
아내 : 첫째 열나. 40도까지 올랐어. 오늘 유치원도 못 가고 아침에 빵이랑 우유 먹자고 해도 그냥 누워있어...
본인 : 아... 새벽에 물을 찾더니 괜히 그런 게 아니었어... 알겠어 말씀드리고 갈게.
곧바로 이 상황을 설명드리고 양해를 구해 일찍이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동안 새벽에 첫째를 미워했던 마음이 너무도 부끄럽고 미안했다. 첫째가 내게 바란 건 잠깐의 시간이었는데. 너무 미안하고 순간 울컥했다. 물을 찾던 그 목소리를 듣지 못했거나 첫째가 조금 컸다는 이유로 혼자 다녀오라고 고집을 부렸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고통스럽다. 뛰고 빠르게 걷고를 반복하며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하필 왜 이럴 때 날씨는 좋은 건지. 평소에 내 마음의 평온함을 느끼게 해 주던 날씨인데 그날은 너무 얄미웠다. 울긋불긋한 풍경을 빠르게 넘기며 집으로 향했다.
본인 : 아... 미안해 첫째야...
집에 도착했다. 첫째는 얼굴이 살짝 빨갛게 변해있었고 누워있었다. 기운 없이 누워있는 첫째를 보니 마음이 쓰렸다. 이 시간에 집에 왔다는 사실에 첫째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해열제를 먹고 나서 열은 조금 내렸다고 하지만 기운이 없고 목이 아프다고 해서 혹시나 코로나가 아닌가 하는 걱정도 했다. 황급히 병원으로 데려갔다. 다행히 코로나는 아니었고 목감기라고 했다. 해열제를 먹이고도 열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면 다시 병원에 오라는 말과 함께 병원 밖으로 나왔다. 오후 시간이 되자 첫째는 조금씩 기운을 차리는 듯했다. 나와 같이 놀자고 하는 걸 보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래서 건강에 제일이구나. 조금 늦었지만 점심을 먹을 때가 되어 첫째가 먹고 싶은 쌀국수로 맛있는 시간을 보냈다. 속 썩이던 녀석이 아프니까 마음이 더 아팠다. 평일엔 함께 보낼 수 없었던 점심시간이기 때문에 그날은 너무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이가 아프기 전엔 잠귀가 밝아서 숙면을 취하지 못한다는 생각만 했었다. 그 생각은 아이를 키우고 이번처럼 갑작스러운 상황을 대하면서 바뀌었다. 새벽에 보내는 아이의 작은 신호에 조금 더 빠르게 반응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아이가 아파서 마음이 아픈 것보다 내가 조금 피곤한 게 오히려 마음 편하다. 평소에 쌓이는 피곤함을 빠르게 회복하기 위해 집중적으로 체력단련을 할 수 있는 개인적인 여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그래서 일상에서 체력단련을 위한 행동을 실천하고 있다. 집에 있을 때도 부지런히 청소를 하고 누워있고 싶어도 꾹 참고 움직인다. 첫째 덕분에 내 마음가짐이 더욱 단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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