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_임인년/일상

우리 시대의 영웅

솔트리오 2022. 10. 5.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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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날보다 조금 일찍 퇴근하는 길이었다. 승객이 북적이는 전철을 타기 위해 세상 구경을 하며 걸어갔다. 힘겹게 전철에 탑승했고 노약자석 옆 통로에 기대어 나만의 사색을 즐기고 있었다.

본인 전화 : 지잉~지잉~
본인 : 여보세요~
아내 : 언제쯤 도착해?
본인 : 음... 30분 정도 남았는데 왜? 무슨 일 있어?

아내의 목소리가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들렸다.

첫째 : 아빠! 뚜껑이 너무 꽉 닫혀있어서 안 열려!
본인 : 어? 뚜껑이 안 열려? 무슨 뚜껑이?
아내 : 아니 애들 함박스테이크랑 피클이랑 같이 주려고 하는데 안 열려. 읍!! 그래서 못 주고 있어.
본인 : 알겠어. 일단 그냥 두고 있어 봐.

전철이 이 사실을 알아차렸다는 듯이 조금 빠르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전철에서 내렸고 가족들이 나를 애타게 찾기에 뚜벅뚜벅 힘차고 빠르게 걸었다. 한 명 두 명 사람들을 제쳐간다. 심장이 산뜻하게 피를 뿜고 있다. 운동과 사랑에 빠졌던 그때가 떠오른다. 드디어 집이 보인다.

본인 : 띠띠띠띠 띠리릭(도어록 열림 소리)
귀염둥이들 : 다녀오셨어요~!(밥을 먹을 때는 우다다 하지 않는다)
첫째 : 아빠! 뚜껑이 강력해서 안 열려
아내 : 피클이 있어야 더 맛있는데 못주고 있어...
본인 : 그래? 어디 보자(피클이 담긴 유리병을 잡고 뚜껑을 돌린다)
피클 유리병 : 뽂!!

온 가족들의 환호와 놀람 안도가 마구잡이로 교차했다.

첫째 : 우와 아빠 힘 진짜 세다!! 이렇게 빡!!
둘째 : 우어~!
아내 : 자~ 피클 줄게~

세상은 어벤저스가 지켜주지만 우리 집 피클 뚜껑은 내가 열었다. 뚜껑 덕분에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날은 우리 집의 영웅이 되었다 아주 잠깐. 원래 영웅은 사람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면 홀연히 사라지지 않던가.

뚜껑 하나도 소홀히 생각하면 안 되겠다. 입을 꾹 닫고 있는 뚜껑아 얼마든지 오렴. 영웅은 언제든 기다리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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