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_임인년/일상

우리 시대의 영웅2

솔트리오 2022. 10. 2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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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 날씨 조오~타


날씨가 좋은 날은 그냥 숨만 쉬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주말에 그러고 싶다. 평일엔 늦잠도 잔다는 녀석들은 주말엔 7시쯤이면 일어난다. 그리고 나를 깨운다. 깨우는 방법도 제각각이다. 첫째는 이제 좀 컸다고 바로 아빠를 깨우지 않는다. 자기에게 주어진 숙제를 일찍 마친 후 나를 깨운다. 기특하다. 그 덕분에 아침에 일어나 오늘은 어떻게 놀 건지 협상하는 횟수가 한 번 줄어들었다. 1년 전쯤 주말보다 누워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한 10분쯤?. 둘째는 누워서도 날 깨운다. 누워있으면 마들렌 같은 통통한 손으로 내 등과 매트 사이에 손을 밀어 넣어 떼어낸다. 조그마한 손이 등과 허리를 쿡쿡 찌른다. 걸리적거리네... 더 자고 싶은데... 하지만 둘째의 그런 모습은 은근히 귀엽다. 셋째는 일어나면 혼자 쪽쪽이(공갈젖꼭지)를 물고 두리번거리거나 뒹굴거리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울거나 웃는다. 배고프면 울고 안 배고프면 웃고. 형아들 덕분에 반사효과로 귀여움 주가를 계속 올리고 있다. 오늘도 기상 알람 둘째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해준다.


둘째 : 일어나요 아빠~~(잠이 덜 깬 목소리와 아빠랑 놀기 위해 일찍 일어났기 때문에 수면 부족이다. 늘 그러듯 짜증과 칭얼거림이 동반된다.)

본인 : (둘째를 힐끔 쳐다본다. 어떻게 쿡쿡 찌르나 언제 끝나려나 기다린다.) 귀염둥이 잘 잤어요?

둘째 : 네 잘 잤어요. 아빠 놀아요~!(칭얼칭얼)


힘겹지만 체온으로 적당히 따듯해진 이불을 밀어 두고 일어난다. 기상 후 유산균 한 포를 아이들에게 먹인다. 응가와 방귀를 잘 뀌는 것 보면 유산균이 효과가 있나 보다. 이제 이 녀석들이 화장실에서 큰 일을 보면 정말 어른과 다를 게 없다. 구수하다. 오늘의 놀이 종목은 얼마 전에 구입한 포켓몬 알까기다. 둘째랑 하는 게임은 그냥 펼쳐두고 자유롭게 즐기고 대화하는 시간이다. 상상이야기 놀이도 재미있다. 가끔 둘째가 하는 말을 들으면 맞는 말인데 너무 기특하고 웃기다. 이런 적이 있었다.


본인 : 둘째야 코 들어봐. 코에 벌레가 있는 것 같아

둘째 : 힝... 이렇게?

본인 : 코를 들어봐. 코를 들어야 아빠가 벌레를 찾아보지.

둘째 : 못 해! 코만 못 들어!(후다닥...)


그렇다. 코만 들 수 없다. 턱을 들거나 천장을 보거나 하는 식의 행동으로 바꿔서 제안을 했어야 했다. 둘째가 알려준 진실이었다. 코만 들 수는 없다.


둘째와 신나게 알까기와 유사한 알 쳐내기 놀이를 했다. 한 참을 기다린 첫째와 놀 차례다. 첫째는 제법 보드게임을 즐긴다. 패치워크와 장미전쟁이라는 보드게임이다. 패치워크는 퍼즐 맞추기와 비슷하고 장미전쟁은 오델로와 비슷하다. 둘 다 많은 집중을 요하는 게임이고 나름의 전략도 세워야 즐길 수 있는 보드게임이다. 20분 정도의 게임시간이 소요된다. 첫째와 게임을 하는 건 즐겁다. 다만 게임에서 졌을 때 속상한 감정표현을 순화하는 연습이 더 필요할 뿐이다. 보드게임으로 마음에서 나오는 감정들을 인정하는 연습도 하고 있는 셈이다. 아직은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게임 전에 약속을 하나 해 둔다. 참고로 이번 게임종목은 패치워크다.


본인 : 자! 첫째야 게임하기 전에 아빠랑 약속하는 거 알고 있지?. 이긴 사람에게는 '축하해요!' 진 사람에게는 '잘했어요!'


약속 후 보드게임을 두 판 정도 했을까. 둘 다 내가 이겼다. 오늘도 감정표현 연습이다. 그렇게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칭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놀이 시간을 이어나갔다. 갑자기 아내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아내 : 아!~ 뭐야 이거 어떻게 들어왔어!!!

벌레 : ...


창가에 웬 노린재 한 마리가 붙어있었다. 방충망과 외창 사이로 말이다. 어떻게 들어왔을까. 아이들도 요란하게 달려왔다. 마치 사건 현장에 모여든 사람들처럼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 얼굴을 요리조리 움직여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예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집에 무당벌레 한 마리가 들어왔었다. 그 당시엔 무당벌레를 잡아 손위에 올려두고 아이들에게 보여줬다. 요리조리 움직이는 모습을 함께 관찰한다. 더 이상 움직일 곳이 없으면 무당벌레는 날아가기 때문에 손끝이 아닌 손바닥과 손등에서 움직이도록 배려했다. 배려라 해야 하는 건가...


본인 : 무당벌레는 위로 올라가려고만 한다?!. 잘 봐봐. (무당벌레가 손가락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뒤집 고를 반복했다.)


근데 노린재는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일단 더 이상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이동 통로를 차단했다. 한 마디로 창문을 닫았다. 재빨리 휴지 한 장을 뜯어왔다. 이제 현장으로 접근한다. 휴지 한 장이 너무 얇은 게 아닌가 생각도 했지만 용기를 냈다. 닫았던 창문을 살짝 열고 노린재가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게 휴지로 덮었다. 절대 죽이지 않았다. 노린재는 휴지 밖으로 나가려고 방충망 위에서 안간힘을 썼다. 나도 마찬가지다. 노린재는 운 좋게 빠져나갔고 나는 다시 추격했다. 엄지로 노린재 등을 살짝 누르고 검지를 이용해 잡았다. 발버둥 치는 게 손끝으로 느껴졌다. 으... 어릴 땐 벌레를 보면 덥석덥석 잘도 잡았는데 지금은 왜 그렇게 싫은지. 곤충은 우리 삶에 깊이 들어와 있는 존재다. 특히 영화 속 몇몇 영웅들의 몸은 곤충의 특징을 살려 그 강인함을 극대화한다. 인간을 구하기도 위협하기도 하는 천의 얼굴을 가진 존재란 말이다. SF 장르에선 추앙받는 존재다. 게다가 곤충은 미래 식량이라는 멋진 타이틀을 가진 의식주 3 대장 중 하나로 대접받는다.

 

 

아내 : 잡았어?! 잡았으면 버려버려~. 창밖으로 보내.

 

 

꼬물거리는 노린재를 방충망 밖으로 풀어줬다. 속이 후련했다. 벌이나 바퀴처럼 우리의 건강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주는 벌레는 아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벌레가 싫어진다. 노린재의 출몰로 시끄러워진 집안을 진화하는 데는 1분도 안 걸렸다. 집안에서 벌레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가족들은 이제야 각자의 역할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 집의 평화를 지켜냈다. 

 

 

아내는 벌레를 보면 기겁한다. 그래 벌레라는 표현보다는 곤충이 좀 더 나은 표현 같다. 그나마 날지 않는 곤충에겐 조금 덜 기겁한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 아내는 번데기를 잘 먹는다. 아내의 권유로 마지못해 먹었던 한 마리의 번데기가 떠오른다. 말캉말캉할 줄 알았던 번데기의 배신. 으슥....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다. 단백질 함량이 높은 식재료로 아이들의 성장과 신경 구성에 도움을 주는 식품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번데기를 찾아 아이들에게 권하진 않을 것 같다. 아이들이 궁금해하면 한 컵 사주고 못 먹으면 아내가 있으니 버릴 걱정은 없다.

 

 

곤충을 사랑하는 분들에게 존경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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