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_임인년/일상

눈과 귀가...저혈압이었다.

솔트리오 2022. 10. 25.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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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같은 출근길이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속이 좋지 않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전철을 타고 회사로 향하던 중이었다. 오전 7시 5분경 일어난 갑작스러운 내 몸의 느낌이었다. 너무 충격적이어서 적어본다.

갑자기 배가 아파왔다. 배탈이 난 것이다. 어젯밤에 먹은 매운 음식이 원인이라 추측된다. 그런데 여느 배탈과는 달랐다.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등에서는 열이 나고 얼굴은 차가워졌다. 높은 산에 올리 온 것처럼 순식간에 귀가 멍해졌다. 전철의 안내방송이 잘 들리지 않았다. 다행히 다음 역에서 내리는 걸 알았기 때문에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전철은 다음 행선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눈앞이 모자이크처럼 살짝 뿌옇게 보였다. 순간 두려움에 갇힌 나를 봤다. 침착하기 위해서 마스크를 살짝 내리고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이마의 땀도 양손으로 닦아냈다. 현기증인 것처럼 어지럽고 쓰러질 것 같았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하지만 넘어지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나마 다행인 건 기댈 수 있는 출입문 옆에 서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내가 넘어지면 다른 승객들에게 불편함을 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혼자 보이지 않은 상자에 갇힌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도 내가 쓰러진 후 느낄 창피함이 더 컸다. 그 상황만큼은 피해야만 한다는 생각이었다. 배가 아픈 일로 쓰러지면 놀림거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덮었다. 정신을 차리려 혼자 왜 이래! 왜 그래! 혼자 속삭이며 문이 열리길 버텨나갔다. 내 손이 낯설어 보였다. 온몸이 탄산음료로 가득 차 있는 듯 짜릿하고 이상한 느낌도 들었다. 호흡이 조금 가빠진 것 같지만 힘들지는 않았다.


드디어 문이 열렸다. 순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눈앞이 뿌옇게 보여서 앞에 사람이 있는지 잘 인지하지 못했다. 머릿속엔 이 상황을 빠져나가야만 한다는 필사의 목표가 있어서 그런 걸까. 술에 취해 휘청거리듯 균형 잡기도 어려운 느낌이 들었다. 어렵게 계단의 손잡이를 잡고 한 걸음씩 밖으로 올라갔다. 다행히 점점 상태가 좋아지고 있었다. 10걸음 정도 걸었을까 복통은 사라지고 시야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직 귀가 멍하긴 했지만 조금씩 좋아지는 게 느껴졌다. 밖이 보였다. 다른 출근길보다 느릿느릿 걸었다. 밖으로 나와서 마스크를 내리고 다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본인 : 뭐지 이건?! 배가 아프다고 이러는 게 말이 돼?


빠르지 않지만 차분히 걷는 속도를 유지하며 나만의 아지트 건물의 화장실로 들어갔다. 뱃속을 비워내니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해졌다. 너무나 허탈하고 무서운 순간이었다. 5분이라는 시간에 내가 한순간에 무기력하다 못해 제대로 서있기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렸다. 그 어떤 경험보다 무섭고 세상이 달리 보이게 만든 경험을 했다. 그간 내가 아이들에게 너무 무섭게 해서 벌을 받는 건가 아니면 아내에게 잘하지 못해서 그런 건가. 그것도 아니면 엄마, 아빠, 동생에게 잘 못한 걸까. 정말 신기하게도 그렇게 아프고 고통스러운 순간이 지난 후엔 감사함과 미안함으로 가득 채워졌다. 아프고 나면 세상을 다르게 본다는 말이 이런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어릴 적 엄마에게 들은 말이 있었다. 내가 신장기능이 조금 떨어지고 저혈압이라고 말이다. 초등학교 5학년쯤이었을 거다. 혼자 집에 있었을 때 화장실에 들어가려고 문을 열고나서 갑자기 쓰러진 기억이 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일어나서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보냈었다. 쓰러진 후 눈을 뜨자 드는 생각은 이랬다.


본인 : 어? 내가 왜 여기에 있지?(화장실 바닥에 앉아 문에 기대어 있었다.)


넘어진 순간은 기억하는데 바닥에 엉덩이가 닿은 순간과 깨어난 순간의 사이는 기억하지 못했다. 심지어 엉덩이가 아프지도 않았다. 차가운 화장실 바닥과 고요한  집.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생생한 이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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