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_임인년/일상

이젠 이것도 찍먹인가

솔트리오 2022. 10. 19.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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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즐거운 식사시간. 점심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누군가 차려주는 음식이기도 하지만 어떤 메뉴가 나올지 궁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내 몸에서도 점심시간 10분 전쯤 '오늘은 뭐가 나올까?' 하는 생각으로 이미 위장이 음식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파블로프의 개가 종소리에 침을 흘리듯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자연스럽게 스트레스가 조금씩 완화된다. 코로나의 여파로 우리 팀의 점심식사는 약 1시간 정도 앞당겨졌다. 처음엔 빠른 것 같았지만 적응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한적한 이 시간대가 아주 마음에 든다. 원래 점심시간으로 돌아가지 않길 바라고 있다. 식당 문을 열고 입장한다. 먼저 식사하고 계신 분들의 식판을 봤다. 카레가 나왔고 국은 닭개장이다. 아주 훌륭하다. 흰쌀밥을 덮은 황금빛 카레는 생각만 해도 식욕을 끓어 올렸다. 음식을 식판에 덜어와서 자리에 앉았다.

 

 

만족스럽게 담긴 음식을 보고 숟가락을 빠르게 들어 올렸다. 그리고 밥을 향해 가는데 잠깐 멈춰 섰다. 흰쌀밥 전체를 카레와 혼합하는 것보다 6(카레밥) : 4(흰쌀밥)로 나눠서 먹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반찬을 보니 카레밥과 잘 어울리기도 하겠지만 흰쌀밥과 어울릴만한 닭개장이 나왔다. 흰쌀밥을 모두 카레에게 양보하는 건 즐거운 식사시간을 조금 아쉽게 할 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음식을 가지고 이래저래 따지고 복잡하게 먹었던 타입이 아니었는데 변화가 생겼다. 나이가 차면서 생각의 구조가 변하는 게 분명하다. 자 이제 비벼본다. 카레에 들어있는 야채나 고기는 적당한 크기로 깍둑 설기 되어있다. 집에서 카레(또는 짜장)를 먹을 땐 아이들과 먹다 보니 재료 손질은 다소 작은 크기로 깍둑 설기 한다. 손이 더 많이 가기 때문에 더욱더 감사한 마음으로 식사를 한다.

 

 

식사를 하고 있는데 카레밥을 먼저 다 먹었다. 카레를 넉넉하게 가져왔기 때문에 식판에 조금 남았다. 흰쌀밥은 남은 카레에 콕 찍어먹거나 살살 굴려서도 먹어봤다. 탕수육과 마찬가지로 난 아무래도 찍어먹는 타입이 확실한 것 같다. 다 섞여있지 않은 밥과 카레가 오히려 입안에서 섞어지다 보니 밥알의 식감도 살아있고 카레의 진한 맛도 살아있었다. 입안에서 섞는 게 훨씬 개성 있고 시작부터 끝까지 맛의 변화를 파악하는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면 순댓국이나 육개장을 먹을 때도 밥을 바로 국물에 빠뜨리지 않는다. 숟가락으로 밥 한술 꾹 눌러 떠서 국물에 담갔다가 먹는다. 한마디로 국밥을 먹을 때도 찍먹이다. 이렇게 먹기 시작한 건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일단 밥을 그냥 말아버리면 바닥에 남아있는 밥알을 건져먹는 게 어렵다. 국물까지 다 마시면 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하지만 물배 차는 기분이라 썩 내키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국물로 배를 채우는 건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숙취가 있거나 몸이 허하지 않다면 말이다. 전골이나 건더기가 많은 국을 참 좋아한다. 국이 남았다면 밥을 한 그릇 더 먹거나 면사리를 추가하거나 아니면 원하는 만큼 숟가락으로 떠서 먹는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한 때 탕수육을 소스에 찍어 먹느냐 소스를 탕수육에 부어 먹느냐에 사람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그 이슈가 붉어지기 전부터 이미 찍어먹음으로 만족을 느끼고 있었다. 그 논쟁에 대해선 관심 있게 보지 않았다. 사실 부먹도 좋다. 중요한 건 음식을 나눠 먹는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사람과 먹으면 부먹이든 찍먹이든 무슨 상관인가. 음식을 먹으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가라는 생각을 해본 것도 사실 처음 있는 일이다. 혼자서 밥을 먹었던 일도 상당히 많이 있지만 그저 음식을 입에 넣기에 바빴다. 갑자기 스쳐가는 생각을 잘 잡은 것 같다. 왠지 오늘도 한 건 해낸 기분이 드는걸. 탕수육이 아닌 카레 덕분에 내가 어떤 타입인지 확실해졌고 누군가 물어보면 찍어먹는걸 더 선호한다고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인생은 작은 것에서 큰 깨우침을 얻을 수 있다. 바로 오늘 먹은 카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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