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입학 후 나의 대학생활은 그리 흥미롭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 보다 다소 여유로워진 시간표를 빼곤 다를 게 없었다. 그래서 삶의 즐거움을 위한 운동에 몰입하며 살았다. 그러던 중 과 선배의 권유로 한 동아리에 가입했다. 내가 좋아하는 활동은 아니었지만 예상 밖의 동아리라며 강추하는 선배의 모습에 호기심이 생겼다. 그리고 놀라운 건 동아리 가입이 너무나 쉬웠다는 점에서 놀랐다. 사실 고등학교 시절 동아리 면접에서 탈락의 맛을 보았다. 지나고 생각해보면 별것 아닌데 그 당시 너무나 창피하고 차별받는 느낌을 받았다. 자연스레 내게 당연한 일이 누군가에겐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몸소 느꼈다. 과거의 경험에 갇혀 동아리의 동 자도 생각 못했던 내게 선배의 권유는 학교를 끝까지 다닐 수 있었던 동력이었다. 물론 물심양면으로 부족함 없이 키워주신 엄마, 아빠가 가장 큰 힘이었지만. 동아리 활동을 시작하면서 칙칙했던 대학생활에 조금씩 색깔이 입혀지기 시작했다. 동아리방에는 언제나 동기, 선후배가 있었다. 언제나 온기가 있는 그 모임과 장소가 마음에 들었다. 수업이 없는 날도 찾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군대를 전역하고 복학생으로 복귀했을 때도 생각보다 어색하지 않았다. 동아리는 건재했고 오랜만에 보는 동기 후배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졸업한 선배들이 자주 찾아와 맛있는 것도 사주고 동아리 발전에 힘쓰는 이유가 뭔지 조금은 이해가 갔다. 매년 초에 동아리가 잘 되길 기원하는 기념행사를 연다. 다른 동아리도 똑같이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 동아리가 처음 생긴 날을 기념해 매년 이어져오는 중요 행사이다. 이 날은 재학생과 졸업생이 모여 친목도 다지고 서로의 근황도 살필 수 있었다. 나이차가 20살 이상되는 선배님들까지 모이는 행사로 제법 규모가 큰 모임이다. 이런 자리에 재학생들의 재롱잔치가 빠질 수 있겠는가. 그 해의 참석자 중 가장 큰 어른은 30대 중반의 졸업 선배가 가장 어른이었다. 기분 좋게 술도 한잔 했겠다 다들 노래 한 소절씩 부르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트롯의 인기가 20대에게 깊이 파고들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알고 있는 트롯도 제한적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신입 후배들이 보여주는 트롯 자랑이 시작됐다.
신입 A : 안녕하십니까! OO학번 OOO입니다. 노래 한 곡 하겠습니다. 흠흠!!... 해~저문 소오 양강에~...
신입 B : 안녕하세요~ 저는 OO학번 OOO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선배들을 위해 노래 한곡 불러보겠습니다. 희~미한 불빛 사이로오~마주치는...
재학생 A : 안녕하십니까!!~OO학번 OOO입니다.
선배들 : 앉아라~앉아~! 자~ 다음다음! 그만~
재학생 A : 콧! 쓰모~오~쓰으~~피어 있느은~
최고선배 : 야 야! 여기가 무슨 어르신 잔치냐!(ㅋㅋㅋ) 다 트롯만 부르고 난리야! 우리도 가요 좋아한다고! 야이 술이나 먹어(ㅋㅋㅋ)
그렇다. 30대 중반인 나도 가요를 좋아하며 30대 중반은 어르신 나이가 아니었다. 경제활동의 중추가 되는 위치에 있을 뿐. 그때는 그 마음을 아무도 모르고 그저 웃었다. 이제 그 나이가 되어보니 누군가 내 앞에서 아주 오래된 노래만 부르거나 춤을 선 보인다면 그 선배와 비슷하게 반응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도 마음은 이팔청춘이라고 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어려 보이고 싶은 그 마음은 영원하다. 패션도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강렬한 색상과 과감한 디자인의 옷들이 많아진다. 20대 시절 어른들의 그런 모습은 어색했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자 그 모습이 멋지게 보였다. 자기를 아끼고 사랑하는 분이구나 하는 느낌으로 받아들여진다. 세월은 그런가 보다. 책이 인간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건 바로 간접경험을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책의 주인공과 나의 연령대가 비슷할 때 그 책이 오래전에 만들어졌다 해도 금방 빠져들게 된다. 회사에서도 팀장님들이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면 예전과는 조금 다르게 생각을 해본다. 지금 상황이 이렇다 저렇다 말씀하시는데 제법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마음이 생긴다.
20대 시절에 30대를 바라보는 시선과 지금 30대 중반인 내가 40대를 바라보는 시선은 달랐다. 웃고 넘어갈 것 같은 일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젊음이란 참 좋은 거고 시간처럼 흘러간다. 지금이 가장 젊고 가장 소중하다. 미래를 보는 시야를 넓히는 것도 좋지만 지금의 내 모습부터 살펴보는 것 또한 중요한 자세다. 해 떠있는 시간에 만나서 달이 뜨는 시간까지 많은 사람들과 함께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선배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최고선배 : 내가 너네들 앞에서야 나이 많은 어르신으로 취급받지만 밖에 나가면 30대는 젊은 거야. 나도 심부름하고 커피도 타고 그런다고. 너네는 이제 20대야. 실수, 실패한다고 좌절할 필요가 없어. 지금은 나도 개인 사업을 하지만 월급쟁이였을 때 회사 사장님도 실수를 많이 하셨어. 근데 지금 생각해도 그래... 그 사장님이 실패 후에 자책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찾고 고민하셨거든. 그분한테 많이 배웠어. 솔직히 사장이 실수하면 직원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근데 그 사장님이 그런 모습을 보여주니까 직원들도 실패나 새로운 업무에 대해 덜 두려워하더라고. 그 효과 때문에 사원들도 자기 의견 말하는걸 안 무서워해.
선배의 말을 생각하면 무언가 특별한 것을 바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일상이 늘 똑같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드라마 같은 복잡한 일상이 아니어서 좋다. 꾸준히 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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