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_임인년/일상

11월 식단_14일~18일

솔트리오 2022. 11. 18.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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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는 사무실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서 돌아다닌 시간이 더 많았다.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줄어들어서 그 순간은 좋은 것 같아 보이지만 사무실에 복귀해서 앉아 있으면 생각이 조금씩 바뀐다. 마치 밀린 숙제를 하는 기분이랄까. 그래도 좋은 점은 현장 방문을 하면 견문이 넓어지기 때문에 책상에 앉아서 하는 고민의 농도가 짙어진다. 업무적인 대화나 설명이 잘 되는 효과가 있다. 숙제가 쌓이고 전화로 받는 숙제가 늘어나지만 분명한 장점이 있다는 사실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한다. 과거엔 현장에서 조금 고생하고 땀 흘리면 영웅담같이 말을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럴 수도 없다. 나보다 훨씬 더한 경험을 한 선배들이 많기 때문이다. 아빠와 대화를 할 때 간혹 설명을 하지만 전달력이 부족해서 그런지 완전히 이해하시지는 못하시는 것 같다. 그래도 좋다. 아빠에겐 반복된 설명도 좋다. 그동안 내가 먹은 식단을 살피다 보니 사진이 작기도 하고 어떤 메뉴인지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아는 선에서 메뉴 이름을 적었다. 우리 집 냉장고에 붙은 아이들의 식단표 같기도 하다. 단지 몇 글자를 써넣었을 뿐인데 새로워 보인다. 세종대왕님이 만든 예술작품이라 그런지 확실히 좋다.

 

한글이 아름답군

한 주간 건강히 잘 먹었다. 이젠 사진 찍는 게 즐겁다. 집에서도 아이들이 밥이나 간식 먹는 모습을 찍는다. 아내가 만든 요리도 찍는다. 새삼 사진으로 남겨지는 순간은 뿌듯함이 느껴진다. 예전엔 몰랐던 기분이다. 사진을 왜 찍으며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이제는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사소한 변화에 스스로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밥은 여전히 맛있다. 나는 어딜 가서도 음식 가린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아빠 엄마에게도 감사할 일이다. 쉬는 날 또는 주말엔 가끔 내가 밥을 한다. 우리 집에선 보통 2인분의 밥을 짓는다. 아내와 나는 주로 밥을 차려주고 옆에 앉아 아이들이 밥 먹는 모습을 바라본다. 첫째는 우걱우걱 둘째는 오물오물 먹는다. 입이 작은 둘째는 한 동안 잘 먹다가 지금은 먹성이 잠잠해졌다. 첫째는 태권도를 하고 와서 그런지 기본 밥 두 그릇이다. 대체로 우리 집의 식단은 채식 위주다. 1주일에 한 번씩 고기를 먹는데 아이들이 먹는 모습을 보면 정말 기분이 좋아진다. 속 섞이고  미운 모습도 밥 잘 먹는 모습을 보면 한 순간에 지워진다. 밥이라는 게 먹는 것으로만 생각할게 아니었다. 먹는 모습을 보고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고 집안 가득 밥 냄새가 퍼지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내가 초등학생이었던 시절 집에 친구를 초대하거나 친구 집에서 저녁을 먹고 집에 오는 경우가 있었다. 친구의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는 동안 너무 좋았고 따듯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땐 외로웠다. 평상시 집엔 나와 동생뿐이었다. 밖에서 일하는 엄마 아빠는 밤 10시가 되어서야 집에 오셨다. 기억에 남는 건 여럿 친구들 중에 동생과 같이 놀러 가는 친구 집이 있었다. 우리 엄마와 친구 엄마도 서로 친구였다. 그래서 자주 놀러 갔고 익숙한 집이 됐다. 어느 날은 엄마가 일 때문에 먼저 나가보겠다고 했다. 친구 집엔 나와 동생 그리고 친구의 가족이 있었다. 해가 있는 낮에는 신나게 놀았다. 그러다 해가 지고 저녁을 먹을 때가 됐다. 처음 몇 번은 감사한 마음으로 먹었다. 이상하게 엄마가 없는 상황에서 나와 동생이 밥을 먹는 그 순간이 너무 괴로웠다. 무슨 맛인지 잘 느끼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다음번에도 엄마를 따라 그 친구 집에 놀러 갔다. 그날도 엄만 먼저 나가셨다. 그리고 해가 뉘엿뉘엿할 때 밥을 차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동생에게 가자고 보챘다. 조용히 놀고 있던 동생은 내가 신발을 신으려고 하니 영문도 모르는 채 똑같이 신발을 신었다. 친구 엄마께서 급하기 나가는 나와 동생에게 밥 먹고 가라며 다정하게 말씀하셨지만 황급히 인사를 드리고 밖으로 나왔다. 왜 그랬을까. 무언가 괴로움을 느낀 건 확실했다. 집에 와서 동생에게 밥을 차려줬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동생에게 너무 미안했다. 왜 그랬을까. 그 순간 동생이 얼마나 배고팠을까. 아무것도 모르는 채 나 뒤만 따라오던 어린 동생의 모습이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누군가 동생에게 뭐라 했던 걸까. 아니면 누군가 동생을 이상한 눈으로 본 걸까. 무작정 집 밖으로 나온 이유를 생각해봤다. 동생을 지키고 싶은 마음과 다른 분께 반복되는 신세를 지는 게 미안하고 싫었던 것 같다. 그 후로 친구 집에서 놀 때 저녁시간을 미리 염두에 두고 시간이 되면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 동생에게 미안한 게 너무 많다. 못된 오빠였다. 그 순간이 떠오른다... 못된 오빠를 잘 따라준 내 동생이 너무 고맙다. 동생은 지금도 날 생각해준다. 동생아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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