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_임인년/독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책읽기_산속의 부처님 나라

솔트리오 2022. 12. 7.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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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종교나 어떤 신을 마음속에 품고 살았던 적은 없다. 시험을 보다가 모르는 문제가 나와 찍어야만 할 때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신에게 행운을 요청한 기억은 있다. 그 외 내 마음속엔 종교나 정신적으로 의지할 무언가를 담아두지 않았다. 올해 중순 경에 내 인생을 바라보는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믿음은 어딘가에서 오는 게 아니라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믿음의 시작은 사소한 메모를 하는 것부터였다. 일기도 써보고 시간의 흐름대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아닌 엉망인 글도 써봤다. 가득 차 있던 그릇이 깨끗하게 비워진 기분. 이 기분이 믿음을 만들었고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걸 알게 했다. 기억하고 싶은 것은 글로 적어둘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마음은 평화로웠고 하면 된다는 믿음이 생겼다.


이번에 아이들이 가져온 책의 주제는 경주 불국사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이 있는 곳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경주하면 불국사로 이어지는 마인드맵은 학창 시절에 만들어진 문신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불국사 다음은 불교가 생각나고 자비와 평화가 떠오른다. 육아를 하는 이 시점에 자비와 평화만큼 간절한 게 더 있을까. 일상을 들여다보면  자비와 평화는 보이지 않는 먼 우주 이야기 같다. 들어보고 알고 있지만 친숙하지 않은 기분이라고 할까. 라디오 방송에서 오디오 공백이 길면 사고로 간주하는데 집에서 아내와 나는 오디오가 길게 비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방송사고로 이어지는 상황과 정반대이며 평화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소란스러움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유튜브나 만화 등 영상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다른 글에도 썼지만 우리 집엔 TV가 없다. 이제는 TV가 없어서 좋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과 멀리 떨어진 경주와의 인연은 수학여행을 통해 시작됐다. 경주에서 보낸 즐거운 추억이 몇 가지 있는데 사실 수학여행으로 갔던 경주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문화재보다는 외모나 친구들에게 관심이 많은 보통의 학생이었다. 학창 시절 떠난 수학여행에서 기억나는 건 정말 어이없는 순간뿐이었다. 중학교 시절 경주는 다른 학교와 기싸움이라고 해야 하나. 어두 컴컴해서 얼굴도 보이지 않는 그 밤에 유스호스텔 창문 너머로 이름 모를 아무개들이 빽빽 소리 지르고 서로 놀리는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다. 나는 서로를 향해 소리치는 친구들을 보고 정말 왜 그럴까 궁금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놀림과 야유가 호랑이 선생님의 등장으로 정리됐다. 그것 말고 다른 좋은 일들이 없었는지 머릿속엔 그 기억만 났다. 시간이 조금 흘러 고등학교 때는 조금 덜 친한 친구에게 바지를 빌려 입었다. 왜 빌렸는지는 역시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아는 두 친구의 다툼이 있던 것이 고등학교 수학여행의 전부였다. 중고등학교 시절 경주 수학여행의 감흥은 없었다. 일기라도 썼다면 그때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느꼈을까. 그러고 보니 어릴 적 썼던 일기장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갑자기 생각났지만 시시때때로 변하는 이상기후 보다 강력한 수많은 사춘기 학생들을 통솔하는 선생님들의 노고가 떠오른다. 질풍노도, 종잡을 수 없는 아이들을 긍정적인 힘으로 다독여주고 격려하는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경주를 눈으로 천천히 즐겼던 첫 번째 시기는 군 전역 후 복학했을 때였다. 기말고사를 끝내고 경주에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가보는 게 어떻겠냐는 동기형의 제안이 있었다. 평소 따르던 형이었기에 단번에 동행하기로 결정했다. 주말을 보낸 후 기차를 타고 경주로 출발했다. 기차를 타고 창밖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여행은 3박 4일의 일정으로 나름 넉넉하게 계획되어 있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여서 그럴까 요맘때 느끼는 날씨와 비슷했다. 형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 이유는 보채지 않기 때문이었다. 시간을 두고 계획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평상시에도 부지런함이 묻어있다. 물론 다급한 일이 몇 번 있었지만 특이한 경우이기 때문에 평소의 태도를 다르게 볼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여행을 하는 동안에도 문화재나 마음에 드는 경치를 충분히 보고 느끼도록 기다려주었다. 조심스러우면서 가끔은 과감하고 결단력 있는 모습에 시간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느리지 않은 여유를 가진 형이다. 덕분에 문화유산을 보는 것도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느긋하고 여유로워서 여행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혼자 경주여행을 오는 사람들도 많았고 몇 분의 사진도 찍어드렸다. 즐거웠던 건 문화재 견문만이 아니었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보낸 3일도 인상적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부끄러움 없이 마음을 터 놓고 얘기할 수 있는 장소였다. 경주에만 가도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데 세계여행을 하면 얼마나 더 다양하고 재미있는 사람들이 있을까. 놀라움이 느껴질 정도였다. 외국인도 만났고 유학 다녀온 사람, 현직 PD, 대기업 입사 전 친구들과 여행을 온 친구분들.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니 저녁시간에 색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시간이 아주 빠르게 흘러갔다. 마지막 날이 클라이맥스였다.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종류별로  막걸리를 주셨다. 경주의 자랑거리라며 여행 온 사람들에게 공짜로 나누셨다. 말도 안 될 정도였다. 맛있게 먹고 다 같이 정리하고 푹 잤다. 세상 기분 좋게 일어나서 다음날 자전거로 근처의 유적지를 둘러보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경주빵 하나 사들고 부산으로 넘어갔다.


두 번째는 결혼 후 네 가족이 함께 떠난 최고의 경주여행 추억이다. 비교적 먼 거리였지만 평일에 여행을 떠나서 그런지 도로도 시원하게 뚫려있고 아이들도 다른 때보다 보채지 않았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첫 번째 목적지는 카라반이었다. 귀염둥이들이 콩콩콩 뛸 만한 10평 남짓 마당이 있는 곳이었다. 공기도 깨끗하고 시원했다. 마당에 누워 아름다운 하늘을 실컷 봤다. 감동적이었다. 소꿉놀이도 마음껏 놀고 신나게 뛰고 바비큐도 즐겼다. 따듯한 화로 앞에서 불멍도 하고 아이들이 가만히 앉아있는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 행복했다. 이때도 조용하게 넘어가지는 않았다. 다음날 아침에 둘째가 아내의 립스틱을 이불에 마구 문질러서 곤욕스러웠지만 주인분께서 너그럽게 이해해주셨다. 너무 감사하고 죄송스러웠다. 그리고 귀염둥이들의 소꿉놀이 장난감이 고양이들 이빨 자국으로 잔뜩 남아있었다. 특히 소시지와 고기에 집중됐다. 고양이들이 보기에 진짜 먹는 것으로 보였나 보다. 둘째가 만든 소동이 무사히 지나가고 두 번째 행선지로 향했다. 유명한 황리단길에서 구경도 하고 맛있는 점심도 먹었다. 밥 먹다가 둘째는 유리 창밖으로 누나로 보이는 분들에게 손도 흔들어 주셨다. 두 번째 목적지는 온돌과 마당이 있는 곳이었다. 그곳의 사장님은 공방도 같이 운영을 하셨던 것 같다. 그 앞에는 초등학교가 있다. 학교 앞이라 그런지 안심이 되기도 했고 주변이 조금은 화사해 보였다. 숙소에 도착하고 잠들기 직전까지 신나게 뛰어놀았다. 여기서 한 가지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건 바로 숙면이었다. 세상에 그런 숙면은 처음이었다. 잠이 보약이고 잘 자면 온몸이 개운해진다는 걸 경주에서 알게 됐다. 온돌방의 위력인가 보다. 가족과 경주여행은 불국사, 동궁과 월지, 월정교, 첨성대, 핑크 뮬리를 중심으로 구경했다. 너무 힘들지 않게 아이들과 즐겁게 걸을 수 있는 곳 위주로 문화재를 보고 왔다. 사진으로 아이들의 모습을 담았다. 집으로 돌아갈 길이 멀었지만 여행의 감사함과 보람이 느껴졌다. 복잡한 도시에서 벗어나 마음 편히 뛰며 놀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줄거리-

 

불국사의 땅이 흔들리고 천둥이 요란하게 친다. 자연재해로 자하문, 다보탑, 석가탑, 대웅전 등 불국사 내부의 건축물에 손상이 발생했다. 불국사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다급하게 와서 하루빨리 복원하기 위해 손상된 일부 건축물 주위에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도록 천막을 설치한다. 각 건축물들은 불국사에서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문화재의 소중함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그리고 각 건축물이 얼마나 중요한지 의미에 대해 설명한다. 청운교와 백운교를 지나 자하문을 지나면 양쪽으로 다보탑과 석가탑이 보인다. 그리고 그 두 탑 너머로 대웅전이 위치한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으로 불국사의 중심이라고 여겨지는 이곳의 손상이 크게 일어났다. 마음이 여린 다보탑은 대웅전을 걱정한다. 자하문과 대웅전은 부처님을 모시는 신성한 곳이기 때문에 금방 복원될 거라며 다보탑을 안심시켜준다. 불국사가 손상된 모습에 다보탑은 과거 누군가 자신이 지키고 있던 보물을 가져갔다며 슬픔에 빠진다. 일본에 의해 해체된 그때가 떠오른 것이다. 오래된 일이지만 다보탑의 슬픔은 여전히 남아있다. 돌사자도 네 마리였던 그때를 그리워한다. 남아있는 한 마리의 돌사자가 다보탑을 위로해준다. 돌사자는 끝까지 남아서 지켜줄 테니 걱정 말라고 한다. 지나가는 새들에게도 이곳은 부처님을 모시는 신성한 곳이니 이곳을 더럽히지 말라고 당부한다. 얼마 후 손상된 문화재 복원이 무사히 끝나고 사람들과 문화재들은 기뻐하며 마무리된다.

 

 

문화재 견학은 아이들이 책에서 보던 역사를 실제로 만날 수 있는 시공을 뛰어넘는 방법으로 생각한다. 호기심 많고 순수한 아이들과 함께했기에 너무 즐겁고 행복했다. 역사가 그저 점수를 위한 공부에서 멈추지 않길 바란다. 하나의 문화유산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듣고 생각한다면 다르게 보일 것이 분명하다. 세계 유명한 문화유산에 주는 관심의 절반이라도 주면 대한민국의 문화재가 세계 유명 문화재에 뒤지지 않는 우수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역사를 만들고 있다. 나도 그러고 있다. 언젠가 내가 기록한 역사를 아이들에게 보여줄 것이다. 아빠의 역사가 이랬구나 하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다섯 식구가 모여서 역사여행을 떠날 차례다. 언제 갈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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